감사 문자부터 포스코 인사까지...검찰이 공개한 '재계농단' 증거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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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핵심 인물 최순실(61)씨의 비위 증거를 쏟아냈다. 총수사면부터 인사개입, 재단출연까지 '국정농단' 사태가 '재계농단'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비정상적인 권력에 부응해 불법적인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3차 공판에서 검찰은 SK와 LG가 그룹 총수 등의 '광복절 특사' 청탁을 한 증거를 공개했다.

검찰 주장을 따르면 김창근 SK 이노베이션 회장(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2015년 8월13일 "감사합니다. 하늘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최태원 회장 사면시켜 주신 것에 대해 감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그해 광복절 특사 포함돼 출소했다.

하현회 LG 대표이사 사장도 약 1년 뒤 안 전 수석을 상대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 사장은 2016년 7월 26일 안 전 수석에게 "구본상 부회장이 95% 복역을 마친 상황입니다. 8·15특별사면 대상 후보로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검토해보시고…"라고 보냈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 구철회(1975년 사망)씨의 장손인 구 부회장은 최 회장과 달리 특사에서 제외됐고, 그해 10월29일에 만기출소했다.

SK는 2015년 10월 설립된 미르재단과 2016년 1월에 세워진 케이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LG는 78억원을 출연했다.

최순실(61)씨.

검찰은 최씨가 한 장짜리 사업계획서로 대기업 납품을 이끌어낸 정황도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진술조서 내용을 보면, 최씨의 측근 회사인 KD코퍼레이션 이종욱 대표는 "평소 와이프를 '예뻐하는' 언니인 최씨가 정부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며 "이에 1장짜리 사업계획서를 건넸다"고 밝혔다.

최씨는 아내 문모씨에게 회사 납품을 어디로 넣고 싶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문씨는 "언니가 대통령과 친한 것을 확인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후 최씨는 이 대표 측에 "가을 쯤에 현대(차그룹)는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현대차 측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씨는 "최순실의 파워를 확인했다"며 "감사의 의미로 최씨에게 2000만원을 두번 건넸고, 샤넬백을 준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증거도 공개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8일 KT 황창규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더블루케이가 작성한 연구용역 제안서와 최씨의 조카 장시호(38)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KT스키단 창단 계획서를 직접 건넸다고 주장한다.

이후 KT 관계자들은 실제로 영재센터 관계자들을 만났고 논의는 스키단에서 아에 '동계스포츠단'으로 확대됐다.

이에 대해 김인회 KT 비서실장은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영재센터는 연구용역비 8000만원을 요구했고, 거절하자 다시 2000만원을 요구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안 전 수석이 포스코 인사에까지 개입한 정황도 나왔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의 전 보좌관 김건훈씨가 조사에서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특별지시사항 관련 이행상황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이에 안 전 수석이 제시하는 방향과 메모를 토대로 내가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포스코 임원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묻자 "맞다. 다만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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