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우리 몸속 미생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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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생물 탐색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몸속 미생물 세계의 신비도 빠르게 벗겨지고 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새로운 기법으로 몸속의 미생물 탐색에 나서 놀랄 만한 사실을 밝혀냈다. 살도 태울 수 있는 강 산성의 위산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위장 속은 생물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무려 128종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결과는 미국학술원보(PNAS) 최근호에 실렸다. 지금까지 위장 속에 사는 미생물은 헬리코박터 등 10여 종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새로 찾아낸 미생물 중에는 방사능 폐기물처리장이나 뜨거운 온천 등에서 발견되는 '데이노코쿠스 라이오듀런스'라는 박테리아도 있었다. 이 박테리아가 사람 몸속에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발견된 미생물 중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종도 10%나 됐다. 연구팀의 위장 속 박테리아 탐색은 23명의 자원자로부터 위 점막 일부분을 채취해 DNA 증폭 기술을 이용했다. 즉, 점막에 붙어 있는 박테리아의 DNA의 양을 수백 배로 늘린 뒤 그 속에 있는 박테리아의 종류를 세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미생물을 시험관에서 배양해 그 정체를 알아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존 미생물의 1% 정도에 적용할 수 있어 미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컸다. 그러나 DNA 증폭 기술은 그보다 10배나 더 정밀한 탐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대장 안의 미생물도 DNA 증폭 기술로 탐사한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 성과에 따르면 대장 속의 박테리아 종류는 400종에 이르렀다. 대장은 마치 미생물 창고와 같았던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대장균은 대장 속 미생물 중 0.1%에 불과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입 안에는 충치균.유산균.나선균 등 수십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지현 박사는 "유전자 염기 서열을 통째로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몸속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10배 이상 많은 미생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예상했다.

우리 몸속에 몸 세포 수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몸의 면역체계 때문으로 과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미생물이 무한정 늘어난다면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수가 되면 더 이상 미생물 수가 늘어나지 못하게 억제하는 면역체계가 있을 것으로 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또 인체 내 미생물 중 어떤 것이 인체에 해를 끼치거나 유익한지 아직 연구가 이뤄져 있지 않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미생물을 알아내는 방법인 DNA증폭 기술은 수많은 미생물의 DNA를 통째로 증폭한 뒤 그 속에 모든 미생물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리보좀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다. 리보좀 종류만큼 미생물 수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리보좀은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 역할을 한다.

최근 새롭게 적용되고 있는 방법은 시료의 모든 DNA 염기를 분석하는 것이다. 바닷물 10㏄가 있다고 치자. 이 방법은 그 바닷물에 있는 모든 염기 서열을 해독한다. 그런 다음 리보좀 등 미생물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는 특정 부위의 염기 종류를 헤아린다. DNA 증폭 기술은 그 양이 아주 적을 경우 증폭해도 미생물의 존재를 알 수 없는 반면 염기서열 해독법은 그보다 10배나 더 정밀하다는 것이 김 박사의 설명이다.

미국의 벤터 박사는 염기 서열 해독법으로 미국 동부 연안의 바닷물 속에 사는 미생물을 분류하기도 했다. 그 결과 기존에 알고 있는 것보다 10배나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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