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망치질과 남자구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나는 겁이 많다. 겁 많은 남편은 못된 남편이다. 망치질을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아내와 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찰나의 거장전'을 관람했다. 그때 우리는 집에 걸어둘 요량으로 브레송 사진의 복사본을 하나 샀다. 사진과 잘 어울리는 액자를 맞추기로 하고 일단 집 한구석에 놓아두었는데, 게으른 내가 반년이나 넘게 미루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액자를 해넣었다.

아내는 그것을 거실에 걸고 싶다고 했다. 액자를 거실에 걸기 위해서는 무서운 망치질이 필요하다. 그래도 아내가 원하면 겁 많은 남편도 망치를 찾아 거실 벽에 못을 박기 시작한다. 콩콩.

못 박는 일을 무서워하는 것은 그것이 자해와 닮았기 때문이다. 망치질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손을 망가뜨릴 수 있는 짓이다. 때려야 할 곳을 한치라도 벗어나면 망치는 사정없이 못 잡은 손을 찍는다. 언제나 발등을 찍는 것은 믿는 도끼이며 왼손을 찍는 것은 오른손의 망치다. 콘크리트 못을 잡은 왼손이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며 나는 오른손으로 망치를 들어 못을 박는다. 콩콩.

보다 못한 아내가 한마디 한다.

"못이 아플까봐 그렇게 살살 박는 거야?"

"세게 박는다고 다 되는 줄 알아? 중요한 건 정확도야. 정확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쾅. 못이 퉁겨 나간다. 다행히 망치에 맞지는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겁에 질렸다. 겁을 내면 망치질은 더 안 된다. 결국 망치로 왼손 검지를 때렸다. 쾅.

"무슨 남자가 망치질도 하나 제대로 못해."

"그렇게 잘난 사람이 어디 한번 해보시지."

아내는 망치를 들고 못을 잡는다.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못을 박는다. 쾅쾅. 원래 아내는 기질이 대담하고 단호한데 그런 것들이야말로 망치질이 요구하는 미덕이다. 벽에 못을 박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내가 못이 된 기분이 들었다. 머리는 못대가리처럼 납작해지고 몸은 못처럼 콘크리트 바닥에 박힌다. 쾅쾅.

서너 번의 망치질로 못은 거실 벽에 튼튼하게 박힌다. 아내는 솜씨 좋은 기술자의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한껏 거만한 턱짓으로 액자를 가리킨다. 나는 보조처럼 얼른 액자를 갖다 준다. 액자를 걸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브레송의 사진을 감상하는 아내의 얼굴에는 힘든 작업을 막 끝낸 노동자에게서 볼 수 있는 자부와 보람이 반짝인다.

못 박기가 끝나고 액자가 걸린 집안은 고요하다. 밤이 온 것이다. 기술자 아내와 보조 남편은 한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우유부단한 나는 머뭇머뭇 아내 쪽으로 돌아눕는다.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아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내는 아직도 아린 내 왼손을 단호하게 밀쳐낸다.

"못도 하나 제대로 못 박으면서…."

망치눈을 한 아내는 못 된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쾅쾅.

"전등을 갈거나 못을 박는 일은 반드시 그대가 해라. 그러지 않으면 남자구실 못한다는 욕을 잠자리에서도 듣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유부남 헌장' 중에서)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