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들강 여고생 살인 16년 만에 단죄…엄마, 딸 유골 뿌린 곳 찾아 “이제 마음 편히 쉬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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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가 11일 광주지법에서 범인에게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진 뒤 눈물을 흘리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가 11일 광주지법에서 범인에게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진 뒤 눈물을 흘리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11일 오전 10시쯤 광주지방법원 302호 법정. 여고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피고인석에 앉은 김모(40)씨에게 재판장이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자 방청석 맨 뒤쪽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서럽게 울었다. 피해자의 어머니 최모(60)씨였다. 한 맺힌 16년의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최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조금이나마 분이 풀린다”며 “먼저 간 남편이 있는 납골당과 딸의 유골이 뿌려진 장소에 찾아가 ‘이제 하늘나라에서 마음 편히 아빠와 쉬렴’이라는 말을 해 줬다”고 했다.

범인 DNA 채취했지만 확인에 11년
2014년엔 증거 부족하다며 “무혐의”
가족들 재수사 요구, 결국 무기징역

드들강 살인은 2001년 2월 4일 새벽 전남 나주시 드들강에서 여고생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알몸으로 발견된 박양에게는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박양의 시신 부검을 통해 체내에서 용의자의 유전자(DNA)를 채취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 DNA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으면서 11년을 흘려보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건 2012년 8월. 대검찰청은 이 사건 용의자의 DNA가 당시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김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김씨는 또 다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었다.

다시 수사에 들어간 경찰이 의욕을 보이며 김씨를 추궁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씨는 “박양을 알지 못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DNA 얘기를 꺼내면 “당시에 채팅을 통해 만나 성관계를 한 여자 중 한 명일 수 있지만 죽이진 않았다”며 범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경찰은 김씨가 거짓 진술을 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성관계를 넘어 살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2014년 10월 김씨에게 ‘혐의 없음’ 처분했다. 소극적 수사의 결과였다.

박양의 가족은 재수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번에는 광주지검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박양이 성관계를 당한 직후 물속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법의학자의 판단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김씨를 기소한 뒤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김씨는 사건 발생일에 자신이 또 다른 여성과 전남 강진에서 찍은 사진을 알리바이(현장 부재증명)로 내세우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결국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강영훈)는 이날 김씨를 사건의 범인으로 판단했다. 무기징역과 함께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20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40시간을 명령했다. 사진에 대해 재판부는 김씨가 스스로 공개하지 않다가 검찰의 압수수색 때 발견된 점으로 미뤄 수사·재판에 대비해 사건 당일 의도적으로 촬영·보관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17세이던 피해자가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무참하게 살해당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살인죄의 공소 시효를 없앤 '태완이법' 시행 이후 첫 유죄 판결이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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