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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계공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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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저는 닭입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그저 평범한 닭입니다. 다만 한류 팬인 주인의 어깨 너머로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다 보니 저도 덩달아 한국을 좋아하게 됐고 한국말까지 배우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를 보다 보니 한국 국내 소식에도 통달하게 됐습니다.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끔찍한 공포에 질리곤 합니다. ‘살처분’이란 말만 들으면 안 그래도 닭살인 제 피부에 수없는 소름이 돋아납니다. 중국인 부자들은 의료 선진국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돈다발을 짊어지고 한국에 가서 치료받곤 하지요. 그런 한국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못 막아 이 지경이 되다뇨. 사람 의료만 선진국이고 우리 같은 축생의 방역에는 아무 신경도 안 쓴다는 말입니까. 이래서야 한국식 치맥이며 삼계탕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KFC를 밀어내고 덩달아 우리 몸값이 올라가길 기대나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국 뉴스를 보고 분석하기엔 한국의 행정력 공백 상태에서 아무도 발벗고 나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빚어진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뉴스도 자주 봅니다. 예로부터 산둥(山東)반도에서 우리 친구들이 한꺼번에 울어젖히면 바다 건너 태안반도에서도 들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중 두 나라가 가까운 사이란 얘기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좋아하던 한류 드라마가 어느 날 TV에서 사라지더니 춘절(설)을 앞두고 예약까지 끝낸 한국행 항공편이 아예 취소됐습니다. 그게 다 중국 정부의 입김 탓이라는군요.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행사는 말도 못 꺼낼 분위기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한·중 관계가 사상 최고랄 때는 언제고요. 그 좋은 시절 한국은 왜 중국에 제대로 된 설명을 못했는지, 중국은 왜 큰 나라답지 않게 좀스러운 대응책으로 한국민의 원성을 사는지 아둔한 닭머리로는 두 나라 위정자들의 행태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누군가 저의 목을 비틀지라도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습니다. 계견승천(鷄犬昇天)이란 성어가 있습니다. 한나라 때 유안(劉安)이 비약을 만들어 먹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습니다. 그때 남은 비약 부스러기를 닭이랑 개가 주워먹고 우주의 기운을 얻어 분수 넘치게 신선 노릇을 했다는 게 바로 계견승천의 유래입니다. 누구 한 명 권력자가 나오면 사돈의 팔촌까지 권력의 떡고물이라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행태를 계견만도 못하다고 경계하는 성어입니다. 작금의 한국 현실이 바로 이 꼴입니다. 마침 올해 한국에서 대선이 있고 새로운 권력이 출현하게 됩니다. 또 얼마나 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계견승천해 보겠다고 나서다 사고를 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올해는 ‘리셋 코리아’의 해입니다. 이런 묵은 적폐를 말끔히 털어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필코 만들어 내길 기원합니다. 꼭이요! 꼭꼭! 꼬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