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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 18세’의 책임과 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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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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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직접·비밀·보통’. 선거의 4대 원칙은 뚜렷하다. 한 표의 가치는 똑같아야 한다. 누구의 표는 2표가 되고, 누구의 표는 0.5표가 되면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유권자는 직접 투표해야 한다. 내 권리를 남이 행사하면 민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도 알 수 없어야 한다. 선거의 공정성은 그래야 보장받는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제한 없이 선거권을 가져야 하는 것도 기본이다. 성별이 다르고, 피부색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이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민주적 선거제도를 도입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4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선거권 18세 부여 놓고 정치적 이해득실만 난무
그들의 참정권 확대,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야

다만 한 가지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어느 나이부터 선거권을 갖느냐는 역사적 배경, 사회 환경, 교육 시스템 등에 따라 나라별로 다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선거권 논쟁은 18세 청년의 권한에 대한 질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눈부신 시기, 낭랑(朗朗) 18세가 정치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선거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낮춘 건 2005년 6월이다.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바꿨다. 19세의 가장 큰 의미는 평균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라는 점이다. 이 나이는 돼야 유권자로서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합의였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조금 비켜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개 나라에서 18세 청년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와 지방 정부에선 16세 선거권도 인정한다.

한국에선 18세면 자원 입대를 할 수 있고, 납세의 의무도 진다. 혼인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18세 선거권을 주저하는 표면적 이유는 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 일부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사의 영향 아래 치우친 정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고3 교실이 혼란스러운 정치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18세 선거권을 인정하는 외국에서 그 나이는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15~2065년’에 따르면 올해 18세가 되는 1999년생은 61만2000명이다. 지난해 4월에 치러진 20대 총선의 유권자 수는 4205만6325명이었다. 18세가 유권자가 된다면 총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46% 정도가 된다. 이 비율은 앞으로 더 줄게 돼 있다. 18세 인구는 2020년 51만 명으로 떨어지고, 2025년에는 45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숫자는 미미하지만 그 의미는 만만찮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간 표차는 57만 표였다.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97년 대선에서는 39만 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18세 유권자가 모두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한 표가 선거 판세를 뒤흔들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야당이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여당이 거부하는 건 이런 정치 지형 때문이다.

양쪽의 논리, 모두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진 결과다. 본질적인 물음을 피해 갔다. 질문은 이래야 한다. "누가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것인가.”

통계청은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를 707만6000명으로 예상했다. 고령인구는 2020년에 813만 명을 거쳐 2025년에 1000만 명을 돌파한다.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세대지만 미래의 대한민국을 책임지지는 못한다.

18세는 다르다. 이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이들에겐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어리다고 무시해선 안 되는 이유다. 편향된 이념에 휩쓸릴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걱정된다고 피하기만 하면 청년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친다.

표 계산이라는 정치적 속셈에서 야기된 여야 간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낭랑 18세는 이 나라의 또 다른 주인들이다. 미래를 위한 정책에 젊은 목소리가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그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긴다면 참정권 확대는 피할 수 없다. 우리 사회 공론의 장에 올려 놓아야 한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