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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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화시대를 맞기 위해 우리사회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고 또 완급이 있어서 한꺼번에 모든 일을 처리하다가는 체하기 쉽다.
또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맡아서 처리해야할 사람이 꼭 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야당 언저리에서 나도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말의 전거는 홍만종의 『순오지』에 있다.
맺어놓은 자가 풀어줘야 한다는 뜻이고, 일을 시작한 자가 그 끝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중국의 고사성어가 아니고 순수한 우리 속담이라는게 인상적이다.
우리가 이토록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질줄 아는 민족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게 자랑스럽다. 그런 속담은 다른 나라엔 별로 없다. 영국 속담에 『제가 뿌린 씨는 제가 거두라』는 것이 있을 정도다.
다분히 불교적인 인과관을 엿볼수 있지만 책임을 강조한 면에선 사회 윤리적 규범성이 강하다
진나라의 평서강군 주처는 젊었을때 못된 불량배였다. 그는 못된 힘으로 고을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어느때 주처는 한 노인에게 물었다.
『올해는 풍작이라는데 왜 모두들 얼굴을 찌푸리고 펴지를 못합니까?』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어차피 이곳에는 3대 액운을 면치 못하니까』
『3대 액운이라니요.』
『남산의 호랑이, 장교 밑의 이무기, 그리고 자네 말일세.』
충격을 받은 주처는 개과천선의 일대 용단을 내려, 3액 제거에 헌신했다.
남산의 호랑이를 쏘아 죽이고 장교 밑의 이무기를 쳐죽인 뒤 그는 1년동안 근신하며 오로지 학문에 전념했다.
그는 과거시험에 급제해 온갖 비리를 가차없이 엄벌하고 또 만족의 모반을 정벌하러 가서는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한때의 불량배 주처의 결자해지는 너무도 멋들어진 것이었다.
고을주민의 칭송은 말할것 없고 먼 후일 이국인들까지도 그의 용기에 감개를 그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자기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은 칭송의 선과를 받을 수 있다.
『법구경』에는『스스로 악을 행해 그 죄를 받고 스스로 선을 행해 그 복을 받는다. 죄도 복도 내게 매어 있으니 누가 그것을 대신해 받을 것인가』라는 귀절이 있다.
결자해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무거운 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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