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가슴 후련한 영단|여당의 대통령직선제 수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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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9일 정부·여당의 시국수습안은 실로 모처럼만에 국민 모두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 다. 여기에는 다수 국민과 야당이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통령 직선제의 수용과 김 대중씨에 대한 사면·복권뿐 아니라 언기법의 폐지, 지방 자치제의 광범위한 실시, 사회 각 분야의 자율화등 모든 정치현안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먼저 우리는 정부·여당의 이 같은 결단을 전폭적으로 환영하면서 앞으로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국민모두의 흔쾌한 동삼을 촉구하고자 한다.
사실 그동안 정국이 혼미를 거듭한 이유는 2·12총선에서 이미 표출된 민의를 외면하고 정부·여당이 독선과 아집에만 매달린 데서 연유한다.
「6·10」에서 「6·26」 까지의 일련의 사태는 『이대로는 안 된다』 는 현상 타파에 대한 국민의 뜻만이 아니고 나아가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물론, 그 방법과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그동안 직선제냐, 내각제냐 하는 여야 간의 끝없는 논쟁은 기실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정치권 안의 「도토리 키재기」 같은 싸움에 불과했다.
국민 여망은 제도 그 자체보다는 공정·공명한 룰에 따라 모든 정치 현안을 다루고 국민의 뜻대로 결정하자는 말로 요약된다.
가령 김대중씨를 정치적으로 묶어둔 채 실시되는 정치게임이 적어도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는 것은 국민들 다수의 느낌이었다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따라서 직선제를 실시하고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단행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국민의 여망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계속 받아왔다. 수습의 방법에는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대도밖에 없는데도 무슨 다른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그것이다. 더욱이 박종철 고문은폐, 범양사건등을 통해 정부의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진 판국이었다.
이처럼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그것이 이번의 「6· 29 결단」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때 국회해산, 총선 제의 등을 검토했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현시국을 푸는 방안으로는 하지하책이었다.
이제야말로 궁색하게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대도를 걸으면서 정면돌파로 시국을 수습키로한 것은 누구보다 민정당 자신을 위해 잘한일이다.
여당은 이번 수습을 국내는 물론 우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세계에 대한 공약임을 명심, 이 방침대로 정치행위를 전개하여 추호도 실망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야당 또한 이를 위해 여당에 협력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야당의 사심없는 협조가 있어야하며 민정당의 수습방안을 거부할 명분도 없다.
국민도 이제 모든 것을 여야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조용히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정당의 수습안은 곧 민권과 공권의 대결에서 일단 국민이 승리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승리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이 실천되고 제도화되어 건실한 민주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 전체에 민주주의가 확산되어 국민적 저력이 효율적으로 결집되고 국가 목표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시국수습 방안에서 표명된 지방자치제 부활, 실시는 대통령 직선제실시 못지 않게 긴요한 과제다.
따라서 이 제도 실시 역시 전면적이고 조건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가 마련중인 지자제 실시방안은 전면 실시 아닌 부분 실시인데다 그것도 지방자치 단체장은 선거제가 아닌 임명제로 되어있다.
대통령도 국민이 직접 뽑는데 지역마다 특수성이 있고 지역주민과 호흡을 같이해야할 자치단체장을 선거제 아닌 임명제로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더구나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고 예비 정치인을 육성시키며 국민의 정치의식과 안목을 기르는 완전한 풀뿌리 정치가 되기 위해서나 행정의 민주화와 주민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도 전면 선거제가 필수적이다.
언론기본법 개폐문제도 더 이상 유예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기능이나 역할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으며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되어야하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국가에 유익한 것이다. 대학의 자율화도 예외가 아니다.
기본권 보장도 현행 헌법의 미비점을 대폭 보완하는 것도 긴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형사소송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등 관계법과 제도에 대한 과감한 수술도 이제 시간을 갖고 개선해 나가야할 것이다.
이 순간 국민이 진지하게 명심해야할 문제도 있다.
후진국이 민주화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 대부분 국민들의 과잉기대에 그 원인이 있었다. 정부는 약하고 할 일은 많은데 국민이 너무나 많은 것을 일시에 요구하고 나서 정치혼란과 불만이 누적된 결과였다. 장면정권의 붕괴도 그런 예의 하나다.
이제 우리는 이런 교훈을 되새겨 이번 기회를 재민주화의 시발점으로 다져 놓아야 하겠다. 조야와 상하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가 자제하되 방심하지 않고 힘을 합해 민주조치들을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야 한다. 4·19 이후 실로 26년 만에 다시 온 이 절호의 기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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