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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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 는 웅변가로도 유명했다.
어느 때 스파르타왕 「알키다모스」가 역사가 「유디데스」 에게 『그대와「페리클레스」 가 씨름을 하면 누가 이기나?』 하고 물었을 때 「유디데스」 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페리클레스」가 이기지요. 내가 그를 쓰러뜨려도 그는 자기가 이겼다고 떠들 사람이고 또 구경한 사람들도 자기가 잘못 보았나 의심하면서 그의 말을 옳게 생각할 테니까요.』
그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다. 토론에 의해 국가의 주요 문제가 결정됐다.
개인의 사회진출도 능변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궤변가 「칼리클레스」 는 법은 다수의 약자가 강자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니 이는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폈다.
반대로 「트라시마코스」 는 법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법의 강제로 타인을 억압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들은 수사학적 허식을 무기로 지적 천박성과 도덕적 불성실을 옹호했다.
때문에 철학자 「플라톤」 은 『정신적 상품을 거래하는 지식의 소매상』 이라고 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소피스트의 문화사적 공헌만은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문법학, 수사학, 웅변술을 발전시켰고 특수층의 전유물이던 학문을 일반화해서 국민정신 활동을 자극, 고무했다.
2천년전 신라시대엔 화백제도가 있었다. 토론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우리 역사에도 엄연히 존재했다.
토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 것은 철학자 「소크라테스」 였다. 그는 상대의 거짓된 지식을 자각시켜 본질적인 개념을 끌어내는 방식을 썼다.
「플라톤」의 『심포지온』이나 공자의『논어』 는 모두 대화와 토론을 통한 진리 접근법을 보여준다.
하지만 토론은 편벽된 마음을 가진 사람하고는 성립하기 어렵다. 과격한 발언이나 단정적인 논리는 상대의 감정만 촉발한다.
「몽테뉴」의『수상록』에 보면 『 「소크라테스」는 항상 싱글싱글 웃음을 띤채 다른 사람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인격이 훌륭했던 것만이 아니고 승리의 자료를 거기서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 간에 갑자기 TV토론이 많아지고 있다. 「민주화」 엔 필수적인 것이지만 진리를 띤데 두고 입에 발린 말만 그럴듯한 궤변가들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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