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망해라” 솔로들의 돌직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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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29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어느새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캐럴’이 됐다.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봄 기운이 생동한다고 느낄 때쯤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밤에 들려오는 자장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이제 진짜 봄이 왔구나 싶기도 했다. 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전령사가 됐다고나 할까. 2012년 발표한 이 노래가 4년 동안 벌어들인 저작권 수익만 46억원에 달할 정도니 ‘벚꽃좀비’나 ‘벚꽃연금’이니 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허나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 귀로 듣는 음악이라고 다를 리 없다. 대중은 자동반사 수준으로 벚꽃엔딩을 흥얼거리면서도 새로운 캐럴이 등장하길 바랐다.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봄만 되면 좀비처럼 되살아나 차트를 뚫고 올라오는 노래를 탐내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2013년 로이킴의 ‘봄봄봄’과 2014년 아이유와 HIGH4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등 일련의 계보가 형성되면서 올해는 더 많은 가수들이 뛰어들었다. 레드벨벳 웬디와 에릭남은 ‘봄인가봐’, 윤아와 십센치(10cm)는 ‘덕수궁 돌담길의 봄’, 비투비는 ‘봄날의 기억’ 등을 들고 나와 왕좌를 노렸다.


하지만 게임은 십센치의 승리로 끝난 듯하다. 1일 공개한 ‘봄이 좋냐??’가 각종 차트 1위를 석권하면서 새로운 ‘봄 연금송’의 탄생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디 언더그라운드에서 단련된 이들답게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달콤한 봄바람에 일렁이는 설렘을 노래하진 않았다.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이렇게 귀엽고 솔직한 빈정거림이라니, 어찌 빵 터지지 않을 수 있으랴.


사실 ‘봄이 좋냐??’가 ‘벚꽃엔딩’을 저격한 것 같지만 이들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서는 같다. 장범준은 “봄이 오니 여기저기 연인들만 눈에 띄어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은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이 노래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니 벚꽃이 빨리 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제목에 담은 셈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아이유도 그런 소망을 밝혔다. “손 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내게 오 사랑노래들이 너무해”라며 봄?사랑?벚꽃 말고 다른 얘기가 듣고 싶다고 역설하지 않았나.


십센치의 노래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게 있다면 “손 잡지 마 팔짱 끼지 마 끌어 안지 마” 류의 애원과 “너도 차일거야 겁나 지독하게” 정도의 저주랄까. 흩날리는 벚꽃 잎에 마음을 실어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풍요 속의 빈곤을 역설적으로 노래하는 대신 휙휙 돌직구를 던진 것이다. 그러니 솔직함과 쿨함이 이 시대 최고의 미덕이 된 분위기에 꼭 들어맞을 수밖에.


이들은 ‘1위 기념 솔로들을 위한 10cm 버스킹’으로 굳히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여의도 벚꽃축제 마지막날인 10일 오후 4시 이랜드크루즈 1터미널 앞에서 “니네만 ‘봄이 좋냐??’”며 떼창을 벌인다는 것이다. 드레스코드는 장엄하게도 블랙이다. 꽃무늬 스커트를 입고는 절대 합류하진 못할 테니 유념하시길. 꽃잎은 또 떨어지고 봄은 그렇게 가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봄?사랑?벚꽃 말고 다른 여러 노래가 흘러 퍼지면서 귀의 호강은 계속될 테니.


글 민경원 기자, 사진 뮤직비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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