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2조원 공장 신설…반도체가 한국경제 버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반도체 분야에 국내 업체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성장세가 가파른 낸드플래시(저장용 메모리)로 투자가 집중된다. 수출 부진으로 우울한 한국 경제에 그나마 반도체가 버텨 주고 있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2조2000억원을 들여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겠다고 22일 발표했다. 이미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는 청주 제1공장과 3공장 건너편 23만9000㎡ 부지에 새 공장을 짓는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지난해 5월부터 짓고 있는 경기도 평택 새 반도체 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설비를 구축 중이다. 모두 15조6000억원이 투입된 이 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이 시작된다.

‘새 금광’으로 불리는 낸드플래시
세계 수요 2020년엔 연 44% 폭증
점유율 1위 삼성도 생산라인 증설
국내 기업들 공격적 투자 나서

올해 하반기부터 호황에 접어든 메모리 반도체는 국내 수출 효자상품이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우리 수출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오른 건 반도체 수출 실적이 19%나 뛴 덕이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9%에서 올해 12.6%(이달 20일까지)로 올라섰다.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커 ‘새로운 금광’으로 불리는 제품이 낸드플래시다.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D램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로 나뉜다. D램 시장은 벌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70% 이상을 점유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아직 파이를 늘릴 여지가 많다. 삼성전자가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올 2분기 기준 34.9%)을 자랑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세계 5위다. D램에 집중하느라 낸드플래시 투자 적기를 놓친 탓이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저장장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는 PC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기업용 서버 등에 모두 낸드플래시가 쓰인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는 지난해 822억 기가바이트(GB)이던 낸드플래시 수요가 2020년엔 5084억GB로 연평균 44% 성장할 걸로 예측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같은 서비스는 모두 엄청난 용량의 데이터가 오가고 저장돼야 하는 ‘데이터 장사’”라며 “낸드플래시 수요는 앞으로 예측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저장 단위인 ‘셀’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드는 3차원 낸드플래시 기술이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이른바 ‘반도체 아파트’로 불리는 3차원 낸드플래시는 평면 낸드플래시에 비해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 2013년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관련 제품을 내놓은 뒤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평면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3차원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확실한 우위를 보이기 위해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 것”이라며 “지난달 세계에서 두 번째로 48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한 만큼 선두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쏠림 등은 우리 반도체산업이 안고 있는 큰 숙제다.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2조원)을 반도체산업에 쏟아부어 ‘반도체 굴기’를 이루겠다는 야심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달 말 중국 반도체 설계업체는 1362곳으로 지난해(736곳)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술 격차가 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당분간 중국이 우리를 쫓아오기 어렵겠지만 반도체 설계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중국이 우리를 월등히 앞서고 있다”며 “전문 역량을 갖춘 강소 반도체 업체를 키우는 것이 다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