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를 열어둔 한판 힘 겨루기|6·10대결 앞두고 긴장감 도는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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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10」대결을 하루 앞두고 정국은 무거운 긴강감에 휩싸여 있다.
정부· 여당측으로서는 이번 규탄대회를 효과적으로 저지한다면 야당과 재야의 기세가 한풀 꺾여 앞으로의 정치일정 추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측은 6·10대회가 앞으로 벌어질 파상적인 공세의 제1파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여당측이 치안력으로 6·10대회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는 반면 야권은 어느 때보다 광범하게 국민적 비판의식이 결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내심으로 6·10대회를 우려하는 눈으로 보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회과정에서 엉뚱한 돌발사건이나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자칫 정국의 전면적인 붕괴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조차 6·10대회가 파국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면 정국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뒤바뀔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야권도 정국의 전면붕괴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야 모두 6·10대결이 불가피하게 격돌양상을 띠더라도 마지막 뇌관까지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모두 대화의 숨구멍은 남겨둠으로써 6·10이후에 대비하자는 생각이다.
민주당 김영삼 총재가 민정당의 6·10대통령후보지명대회 취소를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여야민주화공동선언」의 전제위에서 수습방안 제시를 시사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또 민정당측이 6·10이후 노태우 대표위원과 김영삼 총재의 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도 대결 가운데 퇴노를 열어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김총재의 「여야민주화공동선언」은 실체가 거의 없어 보이는 선언적인 주장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주장으로라도 최후의 협상여지는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중요하다는 해석들이다.
여야가 모두 대화의 의지를 갖고있다면 6·10대회 이후 제한적인 협상의 길은 트일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도 현재로서는 6·10대회의 진행양상에 달려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권은 신민당의 작년「11· 29 서울대회」와 금년의 「2·7 추도회」 「3·3평화의 대행진」 등을 치러낸 축적된 경험 탓인지 이번의 규탄대회도 큰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선 무엇보다 공권력의 능력을 믿고 있다. 그리고 민정당측은 규탄대회를 주도하는 국민운동본부가 대회의 의의를 상징적 효과에 두는 온건그룹에 의해 주도된다고 보고 있다. 평화적 시위를 강조하거나 「봉쇄하면 봉쇄당한다」는 그들의 설명에서 그런 입장은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국민운동본부에 속해 있는 많은 재야단체들이 각 그룹별로 투쟁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 보조불일치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송곳같은」힘을 내기에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도 학생운동권의 향배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간에는 벌써부터 「시청을 불바다로」와 같은 과격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우발적 사고가 발생하고 시민들이 이에 가세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권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점이다.
더 나아가 이번 대회가 4·13조치 이후 첫 번째 이루어지는 전국적 반정부시위이기 때문에 호헌에 대한 야권의 총체적 저항력이 얼마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권은 그 결과에 초조해 하는 측면도 있다.
여권은 이번 대회를 무난히 극복하면 곧 야당과의 대화에 나설 생각이지만 매력있는 카드가 없어 고민하는 눈치다.
4·13철회, 정치일정 절충 등 본질문제를 양보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 하더라도 호헌의 불가피성과 단임의 역사적 의의를 「설득」하는 수준에 맴돌 수밖에 없고, 그래서야 정국정상화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민정당의 관심은 대회의 양상과 함께 대회 후에 내놓을 카드 물색에 쏠려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 「6·10」 규단대회를하루앞둔 민주당과 국민운동본부측은 준비작업을 거의 마무리짓고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이미 상당수 핵심관계자들은 연금을 피해 자취를 감추었고, 박형규 목사·김명윤 민추협부의장 등 상당수 집행부인사들은 대회장소인 성공회 구내로 미리 들어가 있는 상태.
이번 준비작업의 특징은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동참을 극대화시키느냐에 집중돼있다.
그래서 고안된 방안들이 △국기 강하식에 맞춘 애국가제창 △경적 및 타종 △하오9시 TV뉴스시간 중 10분간 소등 등이다.
이와 관련, 박목사는『그동안 운동권의 행동이 너무 앞질러나가 국민들이 따라가기가 힘들었었다』고 지적하고 『이번부터는 국민 전체가 동참하기 쉬운 행동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국민운동본부측은 고지전단을 각각 60만부, 1백만부씩 찍어 그동안 교회 및 성당, 각지구당을 통해 살포했는데 민주당각 지구당에는 1만부씩 할당.
민주당은 당일에는 각 지구당에 소형태극기 3백개, 스티커 2백장씩을 지급할 예정이며 빨강·파랑· 노랑색의 어깨띠도 수백개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난 2·7대회때 등장한 굴건과 같이 시청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굿거리」도 강구중이라는 후문인데 채택여부는 미지수.
국민 호응도에 대해 대회 실무자들은 상당히 낙관하고있다.
한 관계자는 4·13조치와 박군사건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어떻다는 것은 최근의 서명·성명발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2·7」이나「3·3」대회 때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 이라고 분석.
또 교계의 적극적인 호응도 주목할만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안희창·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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