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의 주체성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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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사교육심의회가 드디어「국사교과서 편찬안」을 확정, 발표했다.
지난 3월에 이미 시안이 공개되고 공청회 등 각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새 국사교과서의 편찬내용은 국민이 대체로 주지하고 있어 이제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시안의 내용 24개 항목 중 9개항이 수정되고 11개항이 신설되어 모두 35개 준거로 확대 보완된 것도 국민의 여망을 최대한 반영하고자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분명히 새 국사교과서는 그간 망각되거나 소홀히 되었던 민족사 교육의 주체적 시각이 되살아나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획기적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일제 식민사관의 타성에 젖어 매몰되었던 고조선과 단군의 존재가 청동기 문화 위에 전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형성이란 관점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든가, 한민족의 역사 무대를 중국 동북부 만주지방으로 명기한다는 것은 민족사관에 입각한 국사교과서의 출현을 가장 실감나게 한다.
거기에 그간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 건국 시조와 건국 연대없이 가르쳤던 삼국의 존재도 「삼국사기」를 기초로 역사화 한다든가, 백제의 중국 요서 진출 사실을 명시하고 삼국인의 해외 활동 모습을 부각하며 삼국과 가야인의 일본 진출과 문화 전파활동을 명기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삼국통일을 위한 대당 투쟁이라든가, 원 간섭시기 고려의 반원운동, 조선의 건국에 따른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역사의식을 교과서에 반영한다는 의욕이 눈부시다.
그밖에도 조선 정치사에서 「당쟁」이란 용어대신 「붕당」을 써서 그 긍정적 측면도 살린다든가, 중인계층의 사회·경제·문화적 공헌을 확인하며 한말의 개화·개혁·구국운동을 모두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 기대를 모은다.
이같은 새 국사교과서의 편찬준거안의 내용은 한국사의 주체성 회복과 국사학계의 학문적 심화의 양면을 수렴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국사는 일면으로 학문적 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여야 하지만 동시에 사관과 시각의 학문이다. 때문에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기술을 고집하는 나머지 생명없는 역사사실의 나열을 역사로 착각한다거나, 주체적 정신 없는 사건기술을 올바른 역사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국사교육은 학문적 측면보다는 교육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 때문에 진실을 왜곡한 역사를 나열하여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주인의식 없이 다만 역사 사실을 암기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민족의 자주적 진취와 고난 극복의 단결된 모습을 부각하면서 민족발전의 의미를 고취하는가하면 동시에 역사의 부정적 사실을 냉철히 비판하여 이를 타개하는 용기를 진작하는것도 국사교육에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준거안은 실제 교과서 편수과정에서 교육적인 효과를 감안한 충분한 보완연구가 있어야 한다.
뿐더러 고조선의 년대 등 이미 합의된 것이라도 더 절충이 필요한 것은 충분한 토의로 문제를 해소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국사교과서가 이처럼 개편되는 마당에서 강조되어야할 것은 이것이「유일한 국사」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가능하면 국정보다는 검인정 교과서로 발전시키는 노력도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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