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에 떠는 유럽…반이민 등 극우 목소리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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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앙카라 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19일(현지시간) 축사 중이던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를 총으로 쏴 살해한 터키 남성 메블루트 메르트 알틴타스가 총을 손에 쥔채 고함을 치고 있다. [AP=뉴시스]

터키 앙카라 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19일(현지시간) 축사 중이던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를 총으로 쏴 살해한 터키 남성 메블루트 메르트 알틴타스가 총을 손에 쥔채 고함을 치고 있다. [AP=뉴시스]

유럽이 테러에 떨고 있다. 터키에선 러시아 대사가 총격으로 숨졌다. 독일에선 대형 트럭이 크리스마스 시장에 모인 인파를 덮쳐 12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잇따른 테러로 내년 주요 선거를 앞둔 유럽에서 반이민 정서가 확산돼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더 커질 전망이다.

19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안드레이 카를로프(62) 주터키 러시아 대사가 전직 터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전시회에서 축사를 하던 카를로프 대사를 향해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가 권총을 여러 발 발사했다. 현장에서 찍힌 동영상을 보면 알튼타시는 총을 쏜 뒤 왼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와 알레포를)압제한 이들은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외침도 있었다. 현장에서 사살된 알튼타시는 지난 7월 발생한 쿠데타 연계 혐의로 최근 해임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카를로프 대사는 40년 경력의 정통 외무관료로, 한국어를 잘 해 2001~2006년 북한 주재 대사를 지냈다.

이번 저격은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으로 4년 반 만에 알레포에서 승리한 뒤 수니파 반군이 철수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터키가 반군을 지원한 반면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원했다. 알튼타시가 알레포를 언급한 것으로 미뤄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한 러시아에 보복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터키 언론은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ㆍ터키 관계 정상화와 시리아 사태 해결에 차질을 초래하려는 목적의 도발”이라며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성명에서 “(범인은)급진 이슬람 테러리스트”라며 "문명화된 모든 질서에 대한 위반이며 규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러시아와 터키가 이번 총격 사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터키와 러시아는 지난해 터키가 시리아 접경지역을 비행하던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하며 갈등이 고조됐다가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이 친러 노선을 택하며 관계가 좋아졌다.

19일 오후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메모리얼 교회 옆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으로 철근을 실은 검은 색 대형 트럭이 돌진해 60명 가량의 사상자를 냈다.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려 인파가 몰린 상황이었다. 트럭을 몬 용의자는 경찰에 체포됐다. 아프가니스탄 또는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트럭의 조수석에선 숨진 폴란드인 운전자가 발견됐다. 한국 외교부는 아직까지 한국인 사상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테러로 결론내지 않고 있으나 트럼프는 기독교인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는 “무고한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준비하다 죽음을 당했는데,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지하드(성전)의 일부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86명이 숨진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 당시 IS는 자신들이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유럽 내 미국인들에게 연말 연휴 기간 테러 공격에 주의하라고 경고하면서 특히 크리스마스 시장을 언급한 바 있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미국은 독일 테러 공격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통근열차에서 아프간 출신 남성이 도끼를 휘두르는 등 사고가 잇따르자 이민에 관대했던 독일에서도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4선 도전을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에만 난민 89만명을 받아들였지만 반이민 정서가 높아지며 내년 9월 총선 결과가 불투명하다. 연쇄 테러를 겪은 프랑스에선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인기가 급락해 내년 5월 대선은 강경 보수와 극우파의 대결로 치러질 전망이다.

19일 오후 스위스 취리히의 무슬림 사원에선 한 남성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해 무슬림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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