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의 심경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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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판결이유 설명에 앞서 검찰·변호인·방청인 모두가 끝까지 진지하게 공판에 임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했으나 능력부족으로 뜻대로 안된 것을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3일 상오10시10분쯤 서울형사지법113호 법정. 「보도지침」사건과 관련, 외교상 기밀누설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태홍(민언협사무총장) 신홍범(민언협실행위원) 김주언(한국일보기자)씨등 언론인 3명에 대한 선고공판.
이례적인 「심경토로」를 한뒤 재판장은 차분한 어조로 판결이유를 설명해 갔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한 법정.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의 논지가 전개되자 피고인·변호인들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대조적으로 굳어지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검찰측.
판결이유가 계속됐다. 『나머지 부분에 유죄가 인정되기는 하나 그 동기가 이나라 언론의 발전을 위하여 한 것이기에 다시금 국가사회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선고의 순간, 또 다시 팽팽한 긴장감.
『김태홍 징역10월 집행유예2년, 신홍범 선고유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방청객들은 퇴정하려는 재판장을 향해 요란스럽지 않은, 그러나 힘찬 박수를 보냈다.
환한 얼굴의 피고인들 주위로 변호인들이 몰려 들었고 교도관에게 막힌 가족들은 흐르는 눈물과 읏음이 뒤범빅된 채 연신 손을 흔들었다. 『피고는 저들이 아니라 이 나라 언론』 이라고 변호인들이 변론을 폈던 재판. 야유와 소란이 상례가 되다시피한 「시국사건」재판도 한 법관의 공정하고 성의있는 자세에 따라 전혀 모습을 달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법정이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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