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통해 팬 고마움 느껴 다음 목표는 태극마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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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1+1)'.

'시리우스'(天狼星.가장 밝은 별) 이관우(25.대전 시티즌.사진)가 꼭 얘기하고 싶은 속내 두 가지다. 하나는 고백이고, 또 하나는 '억울함 풀어주기'다. 우선 고백. 이관우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가대표에 관심 없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게 거짓이었음을 이관우는 처음으로 고백했다. 지난 1일 본지 기자와 마주앉은 자리에서였다.

"선수로서 대표팀에 미련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제가 완성됐을 때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은 게 진짜 속마음이에요."

억울함은 '진공청소기' 김남일(전남 드래곤즈) 얘기다. 이관우와 김남일은 한양대 동기동창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다. 두 선수는 2001년 7월 K-리그 대전-전남 경기서 가볍게 몸을 부딪쳤다.

"정말 가벼운 충돌이었어요. 그런데 넘어졌다 일어서는 순간 왼쪽 발목을 잘못 짚은 게 동티가 난 거죠. 2000년 4월 라오스와의 A매치에서 왼쪽 발목 인대가 모두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는데, 그 자리가 삐끗하고 만 거예요. 남일이는 정말 아무 잘못 없어요."

라오스전 이후 4개월간의 재활치료를 받은 이관우는 전남전 이후 다시 6개월간의 긴 재활 속으로 들어갔다. 2002년 2월 중국 전지훈련 중 복사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두 차례 걸친 수술도 받았다. 칠흑 같은 긴 터널이었다.

이관우의 시련은 프로데뷔(2000년)부터 시작됐다. 1999년 11월 신인 드래프트에 오른 상황에서 일본 아비스파 후쿠오카와 계약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양대 소속으로 퀸스컵에 참가하느라 드래프트에서 빼지 못한 게 실수였다. 이중계약에 걸려 J-리그에 가지 못했고, 결국 대전으로 낙착됐다.

이관우는 지난해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올해 벌써 20경기를 뛰었다. 2002년까지 3년간 뛴 경기가 고작 43경기였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약진이다. 재활의 긴 질곡을 늠름하게 헤쳐나온 덕분이다. 올스타 투표 1위는 '절망과 시련에 대한 한판승'에 주어진 훈장 아닐까. 분명 이관우의 인기는 수려한 용모 때문만은 아니다.

마지막 '원 플러스 원'.

이관우가 재활 치료을 통해 얻은 것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나머지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옛날에는 팬들을 봐도 시큰둥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제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만 들으면 자꾸만 눈물이 나요."

대전=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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