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든 물먹고 산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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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도 소래읍 매화리 주민 1천여명이 고농도의 비소가 함유된 우물물을 석달씩이나 마시고도 그 피해가 피부병과 설사에 그친 정도라면 오히려 천만 다행이다.
비소란 우리말로 흔히 「비상」이라고 하는 고래로부터 유명한 독약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약제조에 많이 쓰여왔으나 심한 잔류 독성 때문에 지금은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
맛도 냄새도 없는 밀가루처럼 생긴 이 중금속 독극물은 불과 5∼7mg만 인체안에 흡수되면 목숨을 잃는다. 비소는 단백질과 쉽게 결합하는 성질이 있어 체내에 들어가면 세포의 호흡작용을 저해해서 세포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생명독인 것이다.
또한 이 독극물은 몸 속에 축적되면서 단백질 합성과정에 악영향을 미쳐 발암물질 역할도 하는 것으로 돼있다. 따라서 피해 주민들의 건강문제는 장·단기적으로 검진과 치료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이처럼 무서운 독극물이 어떤 경로로 우물물에 함유됐으며 그것을1천여 주민들이 석달씩이나 사용하도록 방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식수문제가 해결 안된 상태에서 건축허가를 내준것도 잘못이지만 건축이 끝나고 주민들이 입주하기전까지는 상수도문제를 당국이 해결했어야 옳다. 백보를 양보해서 당국이 상수도 연결을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최소한 급조된 우물물의 수질검사라도 사전에 꼭 정밀하게 실시했어야만 했다.
당국에 대해 환경위생을 확보하기 위한 합당한 권리주장을 포기하고 태연히 지하수를 사용한 주민들의 무모한 위생관념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지하수는 심산유곡의 약수까지도 행락민이 버린 쓰레기에 의해 오염돼 있다. 하물며 1km 안에 수십년 된 폐광이 두군데나 있고 농약으로 토양이 절은 논 가운데에 우물을 파면서 수질검사 한번도 안했다는 것은 상식이하의 무지요, 무신경이란빈축을 면할 길 없다.
피부가 짓무르고 설사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치료와 보상은 마땅히 행정당국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국민은 납세의무를 지는 대신「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환경권)」 또한 헌법에 의해 보장을 받고 있다.
당국은 뒤늦게 문제된 우물물에 대한 역학조사와 오염원인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이 기회에 전국에 산재해있는 우물에 대한 조사도 아울러 실시하기를 촉구한다.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84년말 현재 64·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국민의 35%가량은 수도물이 아닌 우물물을 아무런 여과나 소독없이 마시고 있는 것이다. 전국 우물이 한결같이 비소같은 중금속에 오염됐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중에 어느 것이 오염돼 있으며, 얼마만한 사람이 오염된 지하수에 의해 질병을 앓고있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수질 오염이라하면 하천이나 저수지만을 생각하기 일쑤다. 지하수는 흙에 의해 오염물질이 여과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들의 연구에 따르면 흙은 박테리아 이외의 바이러스나 유기물질은 여과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땅에 버려지는 산업쓰레기따위의 유독물질은 1년에 5피트씩 이동하여 수맥으로 스며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국이나, 국민이나 지하수에 대한 주의와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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