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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 싸움은 국경에서 멈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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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강력한 대통령제의 미국에선 대선후보가 누리는 특권도 적지 않다. 국토안보부에 의해 유력 대선후보로 지명되면 대통령 경호실에서 신변 보호를 맡는다. 1968년 대선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당한 뒤부터 취해진 조치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1년 전부터 대통령 경호실의 도움을 받았다.

또 다른 특혜는 국제 정세와 관련된 특급기밀 브리핑이다. 이는 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이 자리를 물려받은 당시 부통령 해리 트루먼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12일 만에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됐다. 미 정부가 비밀리에 핵폭탄을 개발 중이었던 것이다. 훗날 트루먼은 당시 “달과 모든 별들이 내게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쇼크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 충격으로 트루먼은 결심한다. 자신의 후계자에게는 절대 이런 무지함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시작된 게 여야 후보에 대한 특급 기밀 브리핑이다. 공화·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면 미 정보기관에서 찾아와 현직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특급 정보들을 알려준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초당적 협력을 위한 전통이다.

요즘 야당 잠룡들이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및 군사정보교류협정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등 주요 대외정책을 집권 시 폐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집권세력이 바뀌면 대외정책도 변하기 마련이다. 대외정책도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대외정책의 연속성은 가급적 유지되는 게 좋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몇 년 만에 딴소리를 해보라. 앞으로 상대국이 믿어줄 리 없다. 연속성을 보장하려면 대외정책 수립 때 초당적 공감대를 다지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정권 교체 후에도 일관된 정책이 지속된다. 따라서 지금의 혼란도 충분한 야당 측 동의 없이 밀어붙인 정부·여당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다만 야당 잠룡들의 이견도 정보가 불충분한 까닭일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도 유력 후보들에게 기밀 브리핑을 해주면 어떨까.

미국의 브리핑도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트루먼의 호의를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거절한 탓이다. 그러자 트루먼이 편지를 보낸다. “당파 싸움은 미국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고. 편지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마음을 고쳐먹고 브리핑을 받기 시작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