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자회담 시나리오를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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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대북 압박망이 점차 구체화하는 가운데 북한은 벼랑끝 외교를 지속해 사태를 위기적 상황으로까지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다자회담에서 핵 포기로 갈 것인지의 선택 시기에 몰리고 있었다. 북한이 6자회담을 수용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틀은 양자에서 4자로, 그리고 이제 6자로 확대됐다. 한반도 문제가 다자화하는 것은 북한과의 오랜 협상 산물이다.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는 새삼스럽지만 처음에는 남북 간에 다루어졌다.

1990년대 초 남북한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에 입각해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바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는 등 벼랑끝 외교를 통해 협상 상대를 미국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미.북 회담을 인정했지만 제네바 합의 이후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 자신이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남북한과 미.중이 참가하는 4자회담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다.

그러나 북한은 4자회담에서 북.미 회담이 보장된다는 전제에서 참가했다. 4자회담은 북.미 회담을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게 됐으며, 4자회담을 거치지 않고도 대미(對美)회담이 가능하게 되자 회담은 사실상 소멸됐다.

이번 6자회담은 미국이 원한 것이었다.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던 사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양자회담 효용에 관해 의문을 갖게 했다. 더욱이 미측에 핵 개발을 시인하고는 국제사회에 대해 이를 부정하는 북한의 태도는 양자보다 다자대화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인식을 심화시켰다.

미국이 다자대화를 선호하는 근본적 이유는 북핵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역내국가들의 보다 큰 역할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 문제의 부담을 혼자 도맡지 않으며 역내 국가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이라크 전쟁에서 마련한 발판을 통해 중동의 신질서 창출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본심은 다자회담에서 역내국가들의 건설적 역할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참여 국가들의 건설적인 역할 여부다. 회담 참여 국가가 많을수록 합의가 존중될 가능성이 커지지만, 합의를 얻는 과정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것이 상식이다. 참가국 중에는 북핵 해결도 중요하지만 이 기회에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참가국 공히 북핵에는 반대하지만 자신의 국익을 철저히 반영하려 할 것은 자명하다. 6자회담의 성공 여부는 여하히 참여국들이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닌 조율된 목소리로 북한에 일관되게 말할 수 있느냐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시간끌기로 나올 것이다.

회담을 장기화해 내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정부의 탄생을 바랄 것이다. 미국은 무작정 성과없는 회담의 장기화를 꾀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태도에 따라 압박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북한이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미국은 보다 강경한 압력을 현실화할 것이다. 6자회담 개최로 평화적 해결의 길을 열었지만 당분간 살얼음 같은 소강 국면이 유지될 전망이다.

6자회담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회담이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하고 또 다시 핵 카드로 협박하는 제네바 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완전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6자회담에서 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은 한반도 문제를 총망라하는 합의가 될 것이다.

물론 합의의 핵심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지만 이에 대한 대가도 분명히 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참가국 모두가 북핵에 반대하고 대북 지원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부담에는 소극적이다. 결국 제네바 합의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부담은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지 모른다.

돈을 낸 만큼 철저히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하는 야무진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가 야무지지 못하면 6자회담은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라는 밥상에서 국익을 챙기는 각축장이 되고 말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