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도 먹었다, 무섭게 크는 여고생 최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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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최민정(18·서현고)의 헬멧에는 ‘1’자가 새겨져 있다. 세계랭킹 1위를 뜻하는 숫자다. 최민정은 18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결승에서 42초461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최민정은 올 시즌 월드컵 500m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인 이번 대회는 미리보는 올림픽으로 주목을 받았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을 모두 조 1위로 통과한 최민정은 결승에선 500m 세계랭킹 2위 판커신(중국), 4위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 등을 가볍게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최민정은 이어 벌어진 여자 3000m 계주에서도 김지유(17·화정고)·심석희(19)·노도희(21·이상 한국체대)등과 함께 금메달을 따 올시즌 4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2관왕을 차지했다. 전날 1500m에서 우승한 심석희도 4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최민정은 “주 종목이 아닌 500m에서 우승을 해서 기쁘다. 전날 1000m에서 은메달에 그친게 아쉬워서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거침없는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
최, 가속력 좋고 방향 전환 잘해
아시아인 불리한 단거리 깜짝 우승
계주도 1위…월드컵 4연속 2관왕
한국, 평창서 사상 첫 전종목 금 기대

트랙 4바퀴 반을 도는 쇼트트랙 500m는 육상에 비유하면 100m 달리기나 다름없다. 1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수적이다. 최민정은 지난해 11월 토론토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13개월 만에 다시 500m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쇼트트랙 500m는 한국 선수들이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최민정은 올 시즌 월드컵 2·3차 대회 500m에선 은메달에 그쳤다. 최민정 이전에 월드컵 대회 여자 500m에서 우승한 선수는 무려 13년 전인 2003년 10월 최은경이었다. 올림픽 여자 500m에선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전이경, 2014년 소치 대회에서 박승희가 동메달을 딴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남자 쇼트트랙 500m에선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채지훈이 금메달을 땄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선 박승희가 500m에서 우승을 노렸지만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와 부딪혀 넘어지면서 동메달에 그쳤다.

쇼트트랙 강국인 한국이 500m에서 유독 약점을 보이는 건 신체적 특성 때문이다. 단거리는 짧은 순간 폭발적인 힘을 내야하기 때문에 근육이 발달한 선수가 유리하다. 반면 중·장거리는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중요하다. 육상 단거리 황제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중·장거리 스타 모하메드 페러(영국)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100m를 뛰는 동안 무산소 운동을 해야하는 볼트는 근육이 탄탄하다. 반면 장거리 레이스를 하면서 유산소 운동을 해야하는 페러는 비쩍 마른 편이다.

500m 세계랭킹 1위인 크리스티는 “유전적으로 서양인과 동양인은 근육의 질이 다르다. 서양인은 빠른 레이스에 유리한 근육을, 아시아인은 지구력이 강한 근육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 쇼트트랙은 그동안 1000m·1500m와 계주 종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500m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8년 2월 평창에서 올림픽을 주최하는 한국은 이제 최민정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키 1m65cm·몸무게 52㎏인 최민정은 작고 빠르다. 반면 이번 대회 1500m에서 우승한 심석희는 큰 키에 마른 편(1m75㎝·55㎏)이다. 김언호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대표팀 선수 중 최민정이 가장 단거리에 유리한 몸을 갖고 있다. 하체 근력을 강화하면 단거리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최민정은 또 순간 가속력과 방향 전환 기술이 뛰어나 트랙 4바퀴 반을 도는 500m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티는 “평창 올림픽에선 나와 최민정이 500m 금메달을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이번 대회에서는 1000m에만 출전했다.

조재범 대표팀 코치는 “최민정의 500m 우승으로 ‘한국은 단거리에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며 “한국 선수들의 약점인 스타트를 보완하면 평창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도 기대할 만 하다”고 말했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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