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탈한 성품 잊을 길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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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치환의원! 최의원이 타계하셨다는 부음을 듣는 순간 저는 놀라움에 앞서 내신을 저미는 듯한 심경이었습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건강하고 호방하던 최의원이 이토록 허무하게 떠나버리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그 사연 많던 과거를 돌이켜볼 때 살을 에는 듯한 저의 심정을 최의원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해방 후 공산주의가 먹물 번지듯 남한 각지를 물들이고 마침내 여순반란사건이 발발하였을 때 본인은 공비토벌 사령관으로, 최의원은 전투경찰 대장으로 지리산 기슭의 민가에서 6개월간이나 한 방을 쓰며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날이 바로 어저께만 같습니다.
갓 30대에 접어든 혈기왕성하던 그 시절, 그 악착같던 공비들을 완전 소탕하고 신생 조국의 무궁한 앞날을 기원하면서 국가 장래에 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인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최의원은 해방후 혼란기에 경찰의 초우를 굳건히 다지는데 기여했으며 6·25 전란 후에는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공보실장의 중책을 맡아 훌륭하게 수행하셨습니다.
5·16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대화와 협상을 통한 민주정치의 기반을 다지는데 선도적 역할을 한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야간에 정책대결이 격화되어 국회가 혼란에 처할 때마다 최의원은 막후에서 능수능란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면하게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격의없이 상대를 대하는 최의원의 솔직한 인간성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 관계를 맺으면 끊을 수 없는 마력을 갖게 하였습니다.
몇해간의 공백을 떨치고 다시 정계에 복귀해 지난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인생의 찬란한 결실을 거두려는 단계에서 그만 타계하시다니 최의원이나 유족의 안타까움도 안타까움이지만 그보다 국가적 손실이 얼마나 심대한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최의원의 다 이루시지 못한 뜻을 받들어 우리는 국가대계를 의하여 더욱 정진할 것을 영전에 다짐하는 바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1987년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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