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품…왜 가격차 심한가|열대과일 소매 같이 산지의 2∼6배|원가 비싸고 유통마진 높아 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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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국의 정취」가 어쩌니하는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던 바나나·파인애플·키위·멜런 등 이른바 열대과일의 국내재배가 최근 몇년새 부쩍 늘어나 이제는 큰 시장골목의 리어카에서도 볼 수 있을만큼 흔해졌다.
물론 아직도 비싼 값 때문에 선물용 수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사과·배 같은 대중소비품과는 거리가 먼 실정이지만 우리 소비생활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국내재배 부쩍 늘어>
그러나 모처럼 별미를 맛보자든지, 또는 선물을 마련한다고 가게문을 두드려보면 값도 비싸려니와 점포에 따라 값 차이가 심해 당혹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적지않다.
바나나의 경우 요즘은 대만산이 나와 1kg에 도매시장에서는 3천원선에 경락되고 슈퍼에 나오면 5천원정도 한다.
그러나 대만산이 풀리는 5∼6월을 제외하면 바나나 값은 훨씬 비싸질 뿐더러 값 차이도 들쭉날쭉 해 1kg(5개정도)에 7천∼8천원짜리도 있고 낱개에 1천원, 또는 2∼3개에 1천원하는 물건도 있다.
머스크멜런도 중품이 1개에 7천∼8천원 하는 것에서 2천∼3천원짜리까지 천차만별이다.
키위도 1개 6백원짜리에서 6∼7개에 1천원씩 파는 곳도 있다.
이처럼 값이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건의 상품성이다. 같은 크기의 바나나라도 후숙된지 오래되어 물이 가거나 흠이 있는 것은 값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선물용이 아닌 자가소비용은 다소 흠이 있거나 완전히 익어 물이 가기 직전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건을 사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상인들의 충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는 열대 식물을 이식시켜 인공적으로 재배하다 보니 비용이 엄청나게들고 물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폭리의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국내산 바나나는 생산비를 따지면 대만산의 10배나 된다. 맛이나 향기도 본바닥에서 자란 대만산보다 훨씬 떨어진다.

<생산비 외제의 10배>
이런 점에서 대만산 바나나가 수입되는 요즘은 괜찮은 바나나를 비교적 싼값에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은 대만산 바나나도 국내산 바나나v값을 감안해 경락되기 때문에 실제 수입가에 비하면 적지않게 비싼 값이다.
올해 들여온 대만산 바나나의 수입가격 (C&F가격)은 t당 6백6달러로 1kg에 60센트, 약5백원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이 값에 바나나를 들여와 후숙가공 한후 도매시장에 내놔 경매에 부치는데 요즘 경락가는 초당 3천원수준. 수입가의 5배나 된다.
남는 돈은 농수산물 가격안정기금으로 들어가는데 지난해 유통공사가 바나나 수입에서 남겨 기금에 넣은 돈은 30억원을 웃돌았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가외의 부담을 지는 셈이다.
국내산 바나나의 경우는 왜 이런 것을 국내에서 재배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값이 비싸진다.
지난 80년 제주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국내산 바나나는 그후 계속 늘어 작년에는 약 3천3백16t이 생산됐다.
그러나 평당 최소 5만원이나 드는 엄청난 시설비 때문에 국내에서 재배조건이 그중 낫다는 제주라해도 바나나 생산비는 인건비·기타경비를 합해 12kg상자당 2만5천원 정도로 추정된다.
kg당 약2천원꼴. 생산비 자체가 대만산 (12kg상자당 3천∼5천원) 수입가 보다 5∼8배나 비싸게 치는 셈이다.
여기에 유통마진이 엄청나게 붙는다. 작년말 현재 바나나 재배농가라야 약 1천1백가구정도고 지역도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에 바나나의 수입은 제주의 생산자협회와 후숙시설을 갖춘 유통업체 몇곳이 독점하고있는 상태다. 사실상 국내산 바나나의 도매가격은 이들의 손에 완전히 좌우되고 있다.
대만산바나나가 나오기 전 국산바나나 값은 가락시장에서 12kg상자당 상품이 6만원, 중품이 5만원정도에 경락됐다.
결국 산지에서 도매시장으로 오는 단 1단계의 유통과정에서 값이 2배로 뛰어올랐다는 얘기다. 물론 수송비·가공비·수수료 등이 포함된 것이지만 마진폭이 엄청난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슈퍼·백화점에 가면 1kg에 7천∼8천원하니까 결국 산지와 비교, 3∼4배의 차가 생기는 셈이다.
값이 비싸기는 파인애플·키위·머스크엘런 등도 마찬가지다.
요즘 갑자기 눈에 많이 띄는 키위를 예로 들어보자. 고흥·해남 등 전남지방과 제주·경남일대에서 재배되고 있는 키위는 작년 생산량이 9백t정도고 올해는 1천t을 훨씬 웃돌 전망.

<생산자·업체서 농간>
요즘 1백g정도 하는 키위 1개가 슈퍼에서 6백원에 달리고있다.
한단계전인 가락도매시장에서는 1kg에 3천5백원정도니까 1백g 1개는 약3백50원꼴.
한단계 더 거슬러 올라가 산지가격은 1백g짜리가 개당 1백∼1백20원, 늦가을에 수집해 저장했다가 나오는 것들이다.
결국 산지에서 슈퍼와 소비자에게 날리기까지 단 2단계에서 값이 5∼6배나 오른 셈. 배꼽이 배보다 커도 한참 더 크다.
바나나와 함께 국내에서 재배되는 열대과일의 주종을 이루는 파인애플은 지난해 3천6백22t이 생산됐다. 요즘 도매시장에서는 개당 2천∼2천5백원정도에 거래되고 있으나 소매가격은 4천∼5천원으로 약 2배, 산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마진폭은 물론 더욱 커진다.
머스크협회에서 생산출하를 관리, 유통마진이 비교적 적다는 머스크멜런도 도매시장에서개당 7천원정도 하는 것이 소매시장에서는 1만2천원 정도로 2배 가까이 된다.
열대과일은 어느 것이나 유통경로가 생산자-위탁상-소매상-소비자로 매우 단순하지만 생산·유통과정이 일부에 의해 독과점적으로 형성돼 있고 또 소비자들이 값은 비싸더라도 상관치 않는 층이어서 다른 작물에 비해 엄청난 중간마진이 붙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가 되고있는 셈이다.

<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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