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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평가단이 간다] 동네 골목·쇼핑몰을 예술로 만나는 순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어릴 적 63빌딩처럼 높았던 동네 미끄럼틀과 운동장 같았던 놀이터가 어느 순간 낮고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무척 넓어 보이는 운동장도 어른이 돼 다시 본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겠죠. 이처럼 공간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따라서 ‘공간이란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미술관 상설전시 ‘공간의 발견’을 관람하며 공간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면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준서·오한길·황윤서·조은서(왼쪽부터) 독자가 문재원 작가의 ‘단순히 연결된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평면 작품 같지만 몸을 낮춰 작품과 시선을 맞추면 무한히 연결된 미로의 세상이 펼쳐진다.

11월의 마지막 날, 소중 체험평가단은 마치 당장 바다로 출항하는 듯한 배 모양의 경기도미술관에 모였습니다. 체험평가단은 윤가혜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2층 전시관으로 향했죠. “‘공간의 발견’전은 경기도미술관이 미술의 기본 3요소(색·공간·형태)의 이해를 위해 마련한 3부작 중 두 번째 전시입니다. 총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전시 ‘몸으로 발견하는 공간’부터 함께 살펴볼까요?”

위 사진은 윤민섭 작가의 ‘소녀들’로 허공에 대고 그린 듯한 작품이다.

위 사진은 윤민섭 작가의 ‘소녀들’로 허공에 대고 그린 듯한 작품이다.

가장 먼저 체험평가단을 맞이한 작품은 윤민섭의 ‘소녀들’입니다. 플라스틱 막대를 이용해 표현한 생기발랄한 소녀들의 뒷모습을 천장에서 이어진 미세한 끈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플라스틱이라는 차가운 소재로 소녀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장면을 따뜻한 감성을 담아 표현한 것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윤 학예사가 설명했습니다. “허공에 대고 그린 그림과 같은 작품이에요. 작품을 뒤에서 보면 앞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소녀들의 뒷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2차원의 소녀들을 3차원 공간에 표현한 것이 재미있죠? 어디론가 신나게 뛰어가는 소녀들처럼 체험단 여러분도 공간의 매력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임성빈 작가의 ‘코엑스’.

임성빈 작가의 ‘코엑스’.

사람들은 흔히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라는 말을 하죠. 그렇다면 나만의 공간의 물리적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 이건용 작가는 ‘신체드로잉 85-2’를 통해 나만의 공간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검은색 실루엣의 사람 뒤로 하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한 이 그림은 작가가 커다란 캔버스에 눈을 감고 뒤돌아서 등을 댄 상태로 그렸어요. 멀쩡한 팔에 깁스를 하고 팔이 닿는 곳까지 물감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해 상상 속 나만의 공간을 현실에서 표현하고자 했죠. 옆에 전시된 장성은 작가의 ‘비스콘티 길’도 길이라는 공간을 나를 중심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비스콘티라고 불리는 길을 미터(m)가 아닌 몸을 측정 단위로 삼아 너비를 측정한 사진이죠. 윤 학예사는 “만약 좀 더 덩치가 있는 사람을 단위로 삼았거나, 여러분처럼 아이들을 단위로 삼았다면 19명보다 적거나 많았겠죠? 공간에 대한 경험의 상대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랍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높아지는 벽과 낮아지는 벽을 차례로 통과하면 공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할 수 있다.

높아지는 벽과 낮아지는 벽을 차례로 통과하면 공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할 수 있다.

두 번째 전시관으로 가기 위해선 씨오엠이 제작한 ‘높아지는 벽, 낮아지는 벽’을 지나야 합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며 높아지는 벽을 지나다 보면 점차 시선이 차단돼 긴장감과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벽의 높이가 절정에 이르면 낮아지기 시작하는데, 벽이 낮아질수록 시야가 확보돼 탁 트인 지평선을 보는 듯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간이 나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죠. 미로를 탈출하자 두 번째 전시 ‘내가 사는 공간’이 시작됐습니다. 도시·거리·집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의미있고 재밌는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로 가득했죠.

한광우 작가의 ‘뉴 크로스 블록-양방향 확장 구체’. 거울과 거울이 나를 반사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한광우 작가의 ‘뉴 크로스 블록-양방향 확장 구체’. 거울과 거울이 나를 반사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런데 이 건물은 실제로는 없는 건물 아닌가요?” 오한길(서울 서원초 4) 체험단원이 한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맞아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담은 임상빈 작가의 ‘코엑스’라는 작품이에요. 삼성동에 있는 무역센터를 여러 각도에서 찍고 성벽처럼 보이게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들었죠.” 윤 학예사가 대답했습니다. 임 작가는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무역센터 빌딩을 실제보다 더욱 거대하고 세련되게 표현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한 욕망의 공간으로 도시를 표현했습니다. 성벽 같은 건물 뒤로 몽환적이고 연출된 분위기의 하늘을 배치해 부에 대한 욕망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도 담았죠.우리가 눈으로 보는 공간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도 있습니다. 주도양 작가의 ‘라페스타 08-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쇼핑센터를 마치 유리구슬 속 세상처럼 사진에 담았습니다. 대형쇼핑몰 라페스타를 앞뒤, 좌우, 위아래 등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냈죠. 윤 학예사는 “익숙한 공간이 외계의 공간처럼 색다르게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눈동자나 지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참 재밌지 않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공간의 발견’전

전시관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세 번째 전시관 ‘상상으로 만드는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사람 대신 개가 사는 동네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원성원 작가는 재밌는 상상을 했던 모양입니다. 원 작가는 거리에 버려진 개들이 주인이 된 세상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실제 마을과 개들을 촬영하고 합성해 탄생한 작품 ‘강아지 마을’입니다. 어떤 강아지는 왕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강아지는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개들이 주인이 된 마을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어요.

박준서·오한길·황윤서·조은서(왼쪽부터) 독자가 문재원 작가의 ‘단순히 연결된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평면 작품 같지만 몸을 낮춰 작품과 시선을 맞추면 무한히 연결된 미로의 세상이 펼쳐진다.

오용석 작가의 ‘미래의 기억’

‘미래의 기억’이란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윤 학예사가 설명했습니다. “기억이란 말은 과거의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미래의 기억이란 말은 사실 모순이죠. 하지만 작품을 잘 보면 왜 제목이 미래의 기억인지 알 수 있어요.” 오용석 작가의 이 작품은 비디오를 여러 개 이어 붙여 한 화면에서 재생한 작품입니다. UFO가 미국 의사당을 주변을 맴도는 장면이나 미래공상과학영화에서 등장하는 초현대적인 장면들을 일상적인 우리 모습에 합성해 미래의 모습이지만 이미 영화로 만나본 ‘미래의 기억’을 표현했죠.

한성필 작가의 ‘레이어’. 진짜 건축물에 가짜 건축물 천막(그림)을 씌우고 촬영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한성필 작가의 ‘레이어’. 진짜 건축물에 가짜 건축물 천막(그림)을 씌우고 촬영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작품은 권기수 작가의 ‘레이어’입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화면이 따라서 움직이는 렌티큘러 방식을 활용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입체감과 공간감을 생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사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해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죠. 동양화를 전공한 권 작가가 색동이나 매화, 대나무 등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작품을 보는 재미입니다.공간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내가 속한 공간,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또 내가 상상하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하는지에 따라서 공간의 정의가 가능해집니다. 나를 중심으로 공간을 정의하다 보면 반대로 공간을 통해 나를 발견할 수도 있죠. ‘공간의 발견’은 바로 이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전시입니다.

체험평가단 후기

오한길(서울 서원초 4) | 공간을 이렇게 멋지고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멋지다고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씨오엠의 ‘높아지는 벽, 낮아지는 벽’이다 높아지는 벽 너머로 계단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벽 너머에 있는 것이 궁금하다면 직접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내가 느꼈던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조은서(서울 서원초 4) | 미술의 기본 요소 중 공간에 대한 전시였다. 매일 만나는 집·학교·거리가 이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보일 것 같다. 같은 공간을 보더라도 이렇게 다르게 보고 표현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경기도미술관에선 작년에는 색, 내년에는 형태에 관한 전시가 전시된다고 한다. 아쉽게 색에 관한 전시는 놓쳤지만 형태에 관한 전시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준서(서울 서원초 4) | 처음에 공간이라고 하면 단순히 ‘비어 있는 곳’을 떠올렸다. 하지만 전시를 본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공간이란 내 몸이 발견하는 공간부터 일상 속 공간, 상상 속 공간까지 다양한 것을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미술적 의미의 공간은 참 재밌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간의 발견’을 추천한다.

황윤서(서울 서원초 4) | ‘공간의 발견’ 전시를 다녀와서 설치미술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평소 공간을 활용한 설치미술보다는 그림 같은 작품에 익숙했던 탓인지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익숙한 공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앞으로도 자주 미술관에 방문할 것 같다.

글=황인철 인턴기자 hwang.inchul@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경기도미술관,
동행취재=박준서·오한길·조은서·황윤서(서울 서원초 4)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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