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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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의 명재상 「B·디즈레일리」는 동양에서의 정치를 한마디로 「디시뮬레이션」이라고 한 일이 있다. 그가 말하는 동양이라면 인도쯤을 심중에 두고 한 말 같다.
디시뮬레이션(dissimulation)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위선, 저잘난체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도는 지지리 가난하고, 무능해 빠진 나라같지민 정치만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워 잘 꾸려가고 있다.
「디즈레일리」가 무덤에서 나와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요즘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우리나라를 보고 한손으로는 등 두드려주고,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질 하는 사설을 써서 눈길을 끈다.
『산업이 발전하고 정교한 기술을 가진 나라』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내다팔면서 한국의 정치는 어째 늘 그 모양 그꼴이냐는 논조다.
분명 칭찬보다는 흉을 보려고 한말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수준에 걸맞는 정치라면 어느정도의 것일까.
일찌기 「B·프랭클린」은 경제와 정치의 한계상황을 이런 말로 설명한 적이 있었다. 『재산을 얻기위해 덕(virtue)을 팔지말고, 권력을 얻기위해 자유를 팔지 말라』 후덕한 경제와 자유로운 정치의 조화를 이상으로 생각한 얘기다. 「프랭클린」보다 2세기나 앞서 세상에 나온 율곡(이이)은 정치가 잘못되는 이유를 「7무」로 설명했다.
ⓛ상하가 서로 믿으려는 성실성이 없는것 (무교부) ②신하들이 자기 일에 책임을 지려는 성실함이 없는것 (무임사) ③임금의 어진 덕을 성취하려는 성실함이 없는 것 (무성취) ④현명한 인재를 끌어 모으는 성실함이 없는것 (무수용) ⑤재난이 일어나도 천도에 응하는 성의가 없는것 (무응천) ⑥관리들이 백성을 구제하려는 성의가 없는것(무구민) ⑦백성의 마음이 선으로 향하려는 성실성이 없는것 (무향선).
이 교훈은 4백년의 터울을 놓고 지금 새겨보아도 하나도 생소하지 않다.
「7무」를 「7유」로 바꾸어 놓으면 「자동차 생산」 수준의 정치에 손색이 없을까.
어디 자동차뿐인가. 우리나라는 세계 세번째의 반도체생산국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첨단기술의 선두제품인 반도체를 만드는 나라의 정치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논리대로라면 자동차수준보다 몇발 더 앞서가야 옳다. 「헨리·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에 성공한 것은 1902년.
워싱턴 포스트지는 우리나라 정치를 1900년대의 미국만도 못하다는 얘기를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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