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었더니, 수수료는 냉큼 인상 서비스는 미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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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올 초부터 시작된 은행권의 수수료 인상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송금·출금 수수료부터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까지, 예금 관련 수수료가 일제히 오르고 있다. 수수료를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지만, 소비자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송금·출금 수수료 정상화 명목
비정액 수표 발행 때도 수수료
면제 고객 많아 실제 이익은 적어

창구에선 2000원, 자동화기기(ATM)는 1000원. 주요 4개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의 고객이 다른 은행계좌로 10만원 초과 100만원 이하 금액을 송금할 때 물어야 하는 수수료다. 4개 은행이 모두 같다. 올 들어 신한(2월), 하나(5월), 국민(6월), 우리은행(10월) 순으로 창구는 1000~1500원, ATM은 700~800원 수준이었던 타행 송금 수수료(10만원 초과~100만원 이하)를 똑같이 올렸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비이자부문 수익이 중요해짐에 따라 기존에 낮게 책정됐던 수수료를 정상화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없던 수수료도 새로 생겼다. 국민은행은 다음달 19일부터 일반(비정액)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때 장당 500원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2007년 4월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를 전액 면제 조치 이후 9년 여만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다양한 서비스 개선과 물가 상승에 따른 비용을 감안해 수수료를 신설했다” 고 말했다.

올 들어 수수료 인상의 봇물이 터진 건 지난해 8월 금융당국이 선언한 ‘수수료 자율화’ 방침의 영향이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은행 가격 결정에 자율성을 주겠다”며 수수료 인하 지도나 실태점검 같은 그림자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2011년 당국의 압박으로 ATM 수수료를 40~50% 내린 적 있다. 가뜩이나 저금리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이자의 차이)가 줄어 고민이던 은행은 ATM 수수료를 포함한 각종 수수료 인상에 나섰다. 김혜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엔 수수료가 원가에 못 미쳐도 예대마진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었지만, 저금리 상황에선 어렵다”며 “각 은행이 수수료를 현실화하되 충성고객에 대한 수수료 면제·할인 혜택은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이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올려서 쉽게 돈벌이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자동화·기계화로 거래비용은 과거보다 줄었을 텐데 왜 수수료는 20~30%씩 올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예대마진이 감소하고 대기업 여신도 줄어들자 그 부담을 소비자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IB)·자산관리 같은 비이자 부문 수익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없이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뜻이다. 고객 입장에선 수수료가 오른 만큼 서비스의 질이 개선된다고 느끼기 어렵다는 것도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서비스 개선 없이 이뤄지는 은행의 수수료 인상은 은행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작은 이익을 보려다 고객의 신뢰와 은행의 명성이란 큰 것을 놓칠 수 있단 뜻이다. 수수료를 대폭 올려도 수수료를 면제·할인받는 단골고객이 적지 않다 보니 실제 이익은 크게 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은행의 1~3분기 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 결제성 서비스의 수수료를 올리면서 ‘정상화’라고 얘기하는 것은 다소 궁색하다”며 “서비스의 질을 높이거나 새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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