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흑우 직접 키워 발효숙성, 살살 녹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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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야말로 깜짝 선발이었다. 지난 7일 베일을 벗은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2017 서울 편’에서 별을 받은 식당 24곳 가운데 유독 낯선 이름이 눈에 띄었다. 고깃집 ‘보름쇠’다. 제주도의 유명 흑우(黑牛) 전문점 ‘흑소랑’의 2호점 격으로, 지난해 삼성동에 문을 연 제주 흑우 전문점이다. 수십 년 전통의 유명 고깃집도 못 딴 별을 생긴 지 1년밖에 안된 집이 받은 것이다. 김경수(33·사진) 대표는 “미쉐린 별은 아예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며 “특별한 비결은 없고 그저 고기 질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 깜짝 별 하나 ‘보름쇠’
김경수 대표 “흑우 원조는 제주도”

최상급등인 투플러스 한우 전문점은 강남에만 수십 곳이 있다. 그런데 고기 질이 얼마나 좋길래 별을 받았을까. 김 대표는 “사실 소고기는 누가 사줘도 먹지 말라고 할 정도로 몸에 안 좋은 식재료”라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소기름의 녹는점이 사람 체온보다 높은 탓에 기름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 게 문제인데 숙성한 흑우는 녹는점이 낮아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님에게 내놓을 고기를 위해 지난 5년여 동안 수억원을 들여 숙성법을 연구했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숙성법을 개발하기까지 수없이 실패를 반복하며 괴로운 마음에 쓴 소주잔을 숱하게 들이켰다”며 “20대 초반부터 바(bar)에서부터 한식당까지 다양한 요식업을 하며 모아놓은 돈을 고스란히 연구비로 투자한 게 결국 이런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에 흑돈을 취급하는 집은 많아도 흑우 전문점은 흔치 않다. 김 대표가 왜 흑우에 주목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흑우가 맛은 좋지만 덩치가 650~750㎏ 정도로 작은 탓(일반 한우는 1t 이상)에 돈이 안돼서 시중에서 흑우 전문점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며 “사육기간도 38개월로 일반 소보다 6개월이나 더 길기 때문에 굳이 흑우를 키울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도 우연한 기회에 흑우와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제주 성산읍에서 흑우 300마리와 토종한우 50마리를 기르는 목장에 근무하던 중학교 동창 송동환 이사와의 만남이다. 송 이사는 축산업을 전공한 후 제주 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다시 만나 둘이 의기투합해 이 목장을 사들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최고급 소고기인 와규가 흑우의 원조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제주도 토종 품종”이라며 “일제 강점기 일본이 흑우의 씨를 말려버려 한때 멸종위기까지 처했다가 정부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어렵사리 복원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흑우를 키우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에 안타까워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사업을 했다”고도 했다.

글=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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