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음모론 왜 꼬리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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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 음모론이 판치고 있다. 처음엔 검찰의 윤창열게이트 수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된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윤창열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민주당 신주류 의원들의 실명이 보도되는 과정에 대통령의 386세대 참모들이 개입했다는 음모설로 이어졌다.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혼자 죽지 않을 것"이라며 음모설에 힘을 실었고, 386쪽에선 "음모론 자체가 음모"라고 반박했다.

꼬리를 물던 음모설은 청와대 양길승 제1부속실장의 부적절한 청주 행각이 보도된 31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梁실장과 다른 청와대 핵심인사를 몰아내기 위한 특정세력의 의도적 흘리기"라는 주장이 이번 '제2음모설'의 내용이다.

그래서 "이래도 음모, 저래도 음모인가"라는 한탄이 나온다. 과거의 예를 보면 집권세력의 음모설은 정권말기에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YS(김영삼)정권 말엔 대선잔금 관리문제로 '음해세력'논란이 불거진 끝에 김현철씨가 구속됐다. DJ(김대중)정권 말의 숱한 게이트 사건들도 검찰과 국정원을 포함한 권력 내 신.구파 간 음모설에 의해 증폭됐다.

음모는 어둠 속에서 이뤄진다. 전하는 사람이나 그걸 듣고 퍼뜨리는 사람이나 대낮엔 정색을 하고 부인하는 게 음모의 특성이다. 좀처럼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곧바로 반격 성격의 '역음모론'이 나오고 결국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멸하는 자해(自害) 바이러스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해온 투명한 신뢰의 정치는 음모설에 상처받고 있다. 청와대 측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을 탓하기 전에 권력 내 상호불신이 음모를 생산해 내는 토양이 아닌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전영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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