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피의자’ 가능성, 현직 첫 소환조사 배제 안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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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7 면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후 12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일정과 방법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검찰에선 이르면 이번 주 중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 관심은 검찰이 어떤 조사 방법을 택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검찰은 12일 “조사 방법과 절차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검찰은 소환조사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핵심 관련자에 대한 보강수사,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낸 기업인들에 대한 조사, 그리고 11·12 촛불집회 이후 여론의 향배에 따라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소환조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적이 있지만 현직 대통령을 검찰 청사로 불러들인 전례는 없다. 검찰이 대통령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데 법률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고 검사실에 들어서는 것은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그림이다. 출석 요구를 했다가 거부될 경우 강제구인이 가능한가에 대해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소환은 그 과정에서 사실상 기소 효과를 일부 거두는 것이어서 헌법이 인정하는 대통령의 불기소 특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지위를 가장 존중하는 조사 방법은 서면조사 또는 청와대 방문조사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검찰 내부 인사는 “검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상태에서 서면조사 정도로 마무리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제3의 장소에서의 직접 조사 방법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도 검찰청사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는 것이 성난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 방법은 대통령이 어떤 신분으로 조사받게 되느냐와도 직결된다. 검찰은 이미 박 대통령을 잠재적 피의자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씨와 안 전 수석을 직권남용 혐의의 ‘승계적 공동정범’이라는 생소한 법리를 적용해 구속했다. 주요 대기업 53곳으로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요구를 받은 안 전 수석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개입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안 전 수석과 최씨는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은 아직 두 사람이 만나거나 통화한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 진술하고 있고, 11일 구속된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도 “대통령의 소개로 안 전 수석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안 전 수석과 최씨가 “승계적 공동정범”이라고 자신하는 것은 박 대통령을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언상 헌법이 금지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기소행위뿐이어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 게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소를 전제로 하는 조사 형식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헌법은 대통령을 구속해야 할 상황에 이르면 그 근거들을 가지고 기소 전에 탄핵을 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의 혐의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도 관심사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박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에 뇌물 혐의로 고발했다. 야권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포괄적 뇌물죄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기소할 때 검찰이 처음 적용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낸 법리다. 일반적으로 뇌물죄는 금품을 건넨 사람의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인정된다. 하지만 직무 자체가 광범위한 대통령이 받은 금품에 대해 대법원은 “직무와 금품수수 사이에 전체적 대가 관계가 있으면 뇌물”이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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