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헌주의 그룹」의 음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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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은 「레닌」식 혁명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운동권청년 50여명을 검거 또는 수배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제헌의회 그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각 지역 운동권 조직들을 장악하고 공단을 중심으로 의식화 교육도 실시해 뫘다.
실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해에도 이와 유사한 좌익혁명그룹으로 「ML당」이니 「남민전」이니하여 적발, 검거됐다는 정부의 발표를 들어왔다.
그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크게 놀랐고 그들의 범행이 어디까지 진전됐는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사법부의 공판과정을 지켜보아 왔다.
이번 제헌의회 그룹은 볼셰비키혁명방식을 본떠서 「혁명적 당의 구성 - 무장봉기 - 정부전복 - 임시혁명정부수립 - 제헌의회소집 - 민주주의 민중공화국 수립 -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레닌」식 혁명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혁명단계의 실정은 비단「레닌」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면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다.
오히려 레닌 혁명의 특징이라면 혁명전위로서의 「당」과 당의 방침을 실천해 나가는 소비에트의 특수한 조직원리에 있다.
「레닌」식의 혁명적 당은 일반 프롤레타리아로 구성된 대중정당이 아니라 직업적 혁명가들로 구성되고 고도로 중앙집중화 된 엘리트 정당이다.
소비에트는 노동자·농민·병사 등 피압박 기층 국민대표로 구성돼 철저히 당의 통제하에 있는 혁명적 행정기구다.
이번에 검거된 제헌의회 그룹의 활동이 어디까지 진전돼 있었는지는 아직 명백치 않다.
그러나 발표를 보면 그들의 행위는 무장봉기 이전의 의식화 교육 내지 혁명적 정당의 구성수준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소의 제헌그룹이 평양의 공산집단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북한과의 연계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고 「자생적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지금 우리 국민과 당국은 이 「자생」이라는 말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제헌그룹이 자생세력이라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잉태한 시대적 산물이다.
무릇 혁명은 그 반대세력에 의해 잉태되고 성장한다고. 한다. 즉 자유주의 혁명은 절대주의와 전제주의의 산물이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부르좌 지배체제의 모순으로 생겨난다는 말이다.
지배체제가 사회발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하지 못할 때 혁명정세는 익어가게 마련이다.
폭력혁명이라는 불행과 비극을 방지키 위해 그런 단체를 사전에 적발, 해체시키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임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응급조치는 될 망정 근본적인 대책은 못 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혁명정세가 일지 않도록 정치가 발전하고 정부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흡수, 수용해 나가는 발전적 지도체제가 되도록 스스로 변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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