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34) 청봉과 어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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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80년 겨울 토왕폭은 어느 해보다 꽁꽁 얼었다. 79년 겨울에 어느 팀도 완등하지 못하자 외로움을 느낀 토왕폭이 '토왕폭의 사나이들'을 부른 것일까. 81년 1월 두 팀이 며칠 사이로 토왕폭 정상에 올라 제4등과 제5등을 이뤄냈다.

제4등은 부산 청봉산악회가, 제5등은 서울 어센트산악회가 각각 81년 1월 6일과 9일에 달성했다.

77년 1월 토왕폭 제2등을 기록한 부산합동대의 핵심 맴버들과 토왕폭 좌측 암벽 초등자 등 쟁쟁한 산쟁이들로 짜여진 청봉산악회는 80년 겨울에 토왕성 좌.우측 암벽과 토왕성 빙벽을 모두 등반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설악산으로 들어왔다.

김흥수 대장이 이끄는 청봉의 등반대는 정태희.홍복광.이정호.이재섭.권찬근.양진현 대원으로 구성됐다.

80년 12월 27일부터 등반에 들어간 그들은 먼저 3백m 높이의 좌벽 공략에 나서 정태희.홍복광 대원을 정상에 세웠다. 부산의 산사나이들은 81년 새해 첫날부터 토왕폭 빙벽 하단에 불었다.

등반조는 이정호.홍복광 대원이었다. 동굴을 거쳐 동대테라스까지 나아간 그들은 갑자기 쏟아진 폭설로 일단 후퇴했다. 하지만 정태희.이정호 대원이 다음날 아침 일찍 등반을 시작해 4시간 만에 하단 정상에 올랐다.

1월 5일 중단 캠프를 떠난 두 공격대원은 다음날 오후 6시10분 토왕성 빙벽 상단의 정상에 섰다. 토왕성 빙벽 제4등을 깨끗이 마무리한 청봉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상당수의 대원이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모든 대원이 1월 8일 높이 4백여m의 우측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등반 닷새째인 12일 우측 벽의 정상에 섰다. 마침내 청봉은 '토왕폭 좌우 암벽 및 빙벽 한 시즌 등반'이라는 과제를 풀었다.

어센트산악회는 토왕폭의 빙벽과 그 좌.우벽을 일직선 상에 놓고 연장등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81년 1월 2일 토왕골로 들어갔다.

그들의 목표는 청봉산악회의 경우처럼 단지 빙벽과 두 암벽을 잇따라 등반하는 게 아니었다. 세 개의 벽을 하나의 벽으로 생각하고 등반하려는 것이었다.

때문에 공격조의 식량과 장비 등을 나르는 지원조는 등반이 쉬운 우측 능선으로 돌아 올라가거나 지원물품을 미리 부려 놓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격조가 뚫은 루트만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온다는 원칙을 세웠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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