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 정치부기자|기구보다는 실천이 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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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한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정부 내에 곧 인권옹호를 위한 특별기구가 발족될 예정이다.
이번 고문사건을 계기로 들끓는 국민여론과 전에 없이 강력한 정부의 개선의지로 미루어 정부의 특별기구에 대한 기대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이런 기대에 못 미치는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자문기구란 성격이 그렇다.
정부내에 「위원회」란 이름의 기구는 3백개에 이른다. 총리직속에만도 사회정화위원회와 청소년대책위원회·지자제연구위원회 등 10여 개나 된다.
그러나 위원회라고 다 같은 위원회는 아니다. 위원회는 그 기능상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사회정화위원회와 같이 집행권을 행사하는 합의제중앙행정조직으로서의 위원회와 소청심사위원회처럼 준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원회, 지자제연구위원회와 같은 자문기구로서의 위원회다.
이번에 신설되는 인권기구도 자문기구로서 결국 강력한 의지표명과는 엇갈리게 가장 소극적 기능의 위원회범주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더우기 명칭문제를 놓고도 약간의 왈가왈부가 있는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연구」자를 집어넣어 「인권옹호연구위원회」로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만 된다면야「개선」인들 「연구」인들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구명칭에서 느껴지듯 정부가 인권옹호라는 문제에 적극성이 없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기구문제만도 그렇다.
총리직속의 자문기구, 국회인권특위, 민정당내 인권특별기구, 치안본부장직속의 인권기구,각 경찰서마다 생기는 고문신고센터-.
전국경찰서가 1백96개가 된다니 이번 사건으로 생기는 간판만도 줄잡아 2백여개나 된다.
심지어 현재 법무부 내에 있는 인권과를 인권국으로 확대승격하자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기구를 만들고 제도를 고치려 하는것은 좋다. 기구가 없어서, 제도가 모자라서 일이 터졌다면 당연한 일 일게다.
그러나 그게 아니질 않은가. 결국은 의지의 문제요, 실천의 문제다. 지금의 기구신설과제도 개선의「붐」이 그저「관료적 사고」에서 출발한 약방문이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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