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위주의 토속 에로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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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해 토속에로영화 『변강쇠』로 히트했던 엄종선감독과 배우 이대근·원미경 트리오가 또다시 비슷한 유형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줄거리만 다를뿐 내용은 역시 조선조시대의 성 풍속도다.
노비들의 본능적이고 순박한 성과 양반들의 방탕하고 부패한 성이 대조적으로 질펀한 화면속에 펼쳐진다.
『변강쇠』에서 성을 과장된 해학으로 다뤘던 엄감독은 이번엔 노비들의 생존문제와 직결시켜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려했다.
『사노』는 양반들의 횡포에 무너져버리는 노비들의 비극과 저항을 테마로 하고있다.
어느 대감집 노비 「들판」(이대근)은 하녀 「오월」(원미경)과 서로 사랑해 결혼을 약속한 사이. 그러나 「들판」은 곧 대감의 사위 대신 옥살이를 떠나고 「오월」은 늙은 대감의 회춘을 위한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다.
3년여 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들판」은 「오월」이 대감의 아이를 낳은 사실을 알고 격분, 대감부인에게 성적폭행을 가해 복수하고 「오월」과 도망쳐 망나니가 된다. 그후 어느날 형장에 대감이 끌려와 그의 칼앞에 목을 늘어뜨린다.
이 무거운 주제가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오락적인 면에 너무 치우쳐진 때문이다.
현란한 에로장면·과장된 연기·군더더기 얘기 삽입등으로 드라머의 재미만을 강조했다.
또 주인공들이 겪는 비극과 심리적 갈등에 대한묘사가 충분치 못했고 「들판」이 분노하는 과정이 설득력이 없어 극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엄감독은 당초부터 흥행을 크게 의식해 관객이 재미있어 할 것을 총동원한듯하다. 그래서 섹스·액션·코미디·미스터리등 흥행적 요소가 골고루 배합되어있다.
그저 보고 즐기고 나서 툭툭 털어버리는 오락영화로 볼 때 『사노』는 수준급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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