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옷 생각하며 잠못이루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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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섣달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발길은 바빠지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에게 설이란 어떤 염원이 강하게 지배하는 의식이기도 했으므로 대청소·이부자리·빨래·그릇 정돈을 성심껏 하셨고, 차례준비·유과·설빔에 이르기까지 어머니가 하실 일은 마당 귀퉁이에 재워둔 장작만큼이나 일거리가 쌓여 마음따라 손길도 그만큼 바쁘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날 나의 설은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한달쯤이나 먼저 앞당겨 어머니 따라 설을 만났고, 어머니의 바쁜 손길옆을 뱅뱅 돌며 하나 둘 손가락을 꼽으며 마음을 태웠던 것이다.
아, 그때 설을 기다리던 하루 하루는 왜 그렇게 길기만 했는지 잠자다가도 몇번째 깨어났던 소풍 전날보다 그것은 더지루하고 황소걸음같아 시간이란게 꼬리라도 있으면 있는대로 확 잡아당겼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설은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고 조급하게 마음을 태우게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년내내 언니들께 건네받기만했던 옷이며 양말대신 설날만은 반드시 새옷·새양말·새 고무신을 내몫으로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옷도 그냥 옷이던가. 명주에 분훙물을 들인 그 예쁜 한복이 완성되면 치마에 주름을 잡기위해 아랫단을 언니가 실로 감쳐주기가 무섭게 요밑에 몇날밤을 깔고 자곤해서 어머니는입기도 전에 해져버리겠다고 성화를 하셨다.
꽃그림이있는 코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날 밤에 나는 아마도 꿈길에 천국을 다녀 왔으리라. 물질적인 대싱을 두고 그리도 만족했던 시절이 그때 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기다리던 설날이 오면 이른 새벽 어머니는 살강의 그릇들을 씻으시며 하루가 시작되는데, 그믐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가 결국 나는 잠에 떨어지고 말지만 어찌나 긴장했던지 그릇 씻는 소리에 놀라 깨어 몽매에도 잊지 못한 새옷을 갈아입기에 바빴었다.
세배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촌들 앞에 섰을 때의 부끄럽고 자랑스럽던 그 황홀한 도취감의 절정.
그런 어린날의 명절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은 아무런 문화적 혜택이 없는 나에게 감수성과 상상력의 티없는 길목을 틔워 주었고, 의심없는 기쁨과 감동을 사람할줄 아는 지혜도 터득하게 해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날마다 설날이라고해도 좋을만큼 기대보다는 포만에 더 가깝지 않은가.
설날을 기다리며 어떤 특수한 축제가 있다고 믿는 기대감이 또한 여러날을 기쁘게 했던 나의 어린날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인 세배돈의 수확외에 더다른 의미를 찾지 않는다.
거기다가 설날은 느닷없이 「민속의 날」로 이름마저 낯설어버린 오늘이다. 명절의식의 상실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꽤나 큰 중대한 것에 속해 있다.
명절은 조건없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가족간에, 이웃간에 축제분위기를 돋우며 무미건조한 일상적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민간놀이의 대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신적 해방감은 불화와 오해를 없애고 신성한 즐거움을 안겨주리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자연스러운 구원의 형식이 명절일진대 까마득한 어느 옛날 꼬까옷 한벌로 몇밤을 잠 못이루며 설랬던 어린날의 설날을 다시한번 그리워하며 이 나이에도 설레는 가슴으로 설날전야를 하얗게 뜬눈으로 새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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