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촛불집회 중학생 발언 "국민으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박수치지 않습니다. 당신에겐 도망이 더 어울립니다. 국가로부터 국민으로부터 도망치십시오”

기사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 2차 국민행동 및 촛불집회가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5일 20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시민 자유발언대에서 나온 한 중학생의 발언이다. 이 발언은 각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화제를 모았다. “명문이다”, “어린 학생에게 배운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학생 1000여명 별도 집회서도 "박근혜 하야"
입시경쟁, 스펙, 국정교과서 등 불만 쌓여
최순실 딸 정유라 특혜 의혹 계기로 폭발

이번 집회는 유독 학생 참여가 많았다. 휴일인데도 교복을 입고 나온 중ㆍ고교생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주 집회에 비해 학생들끼리 모여 시국선언을 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등의 집단 행동이 많아졌다.

5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중ㆍ고교생 1000여 명이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 청소년 단체 ‘중고생연대’ 등이 주축이었지만 단체 회원보다는 페이스북 등에서 정보를 얻고 친구와 함께 거리로 나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학생 집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중고생혁명’은 일주일만에 3000여개의 ‘좋아요’를 받을만큼 활발하게 퍼졌다.

학생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과 구호 등을 살펴보면 교육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과 딸 정유라씨의 입학특혜 의혹 등을 통해 터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중고생연대 시국선언문에는 ‘입시경쟁’, ‘시험’, ‘학원’, ‘스펙’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이어 이들은 “많은 고등학생들이 365일 중 364일을 등교할때 정유라는 28일만 출석하고 졸업을 인정받았다”며 “일류대학을 한순간에 입학했고 학생들에게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박근혜ㆍ최순실 공저’라고 쓴 가상의 국정교과서 표지에 낙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조현지(17)양은 “정유라를 보면 밤잠을 줄여 공부한 우리 학생들의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행동은 이번 집회에 앞서 각 학교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10월 말부터 전국 각 고교에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다른 학교로 퍼졌다. 학생의 날인 이달 3일에는 학생 시국선언을 내놓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시국선언 영상은 유튜브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됐다. 이번 집회에 참석한 최모(16)군은 “사회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쉬는 시간 교실 칠판에도 ‘박근혜 하야’라고 적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라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제껏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정교과서 등 현 정부의 교육 정책과 교육 현실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컸던 게 배경”이라며 “SNS를 통해 의견 공유 속도가 빨라졌고 거리로 나와 사진, 영상 등으로 자기를 표출하려는 학생들도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인터넷에는 “수능을 앞두고 있어 못 나가 부끄럽다” 등 고3 수험생들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태가 계속 이어질 경우 학생들의 집회 참여는 수능(17일)을 기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