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우리 소리」통해 옛 정취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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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둥따닥 둥딱. 『아이고오 아버지이, 불효여식으은 요만큼도 생각마아옵시고오…어어서어 눈을 뜨셔서…좋으은데 장가들어 칠십생남 허옵소오서』 12월의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주룩주룩 내리는 18일 하오2시.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판소리 전수실에는 20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지는 장면」의 애끊음을 「선생님」 의 북 장단에 맞춰 자신의 한인 양 목청을 길게 높여 토해내고 있었다.
겨울비의 스산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여성들의 열기는 4박의 빠른 찾은 몰이로, 어서 물에 빠지라는 선원들의 성화에 몰린 심청이의 숨가쁨을 소리(창)와 발림(몸짓)에 싣고 있었다.
최근 국악에 쏠린 여성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얼핏 접근 (?) 하기 힘들어 보이는 판소리에까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두 시간 목청을 돋우어 외쳐대다 보면 사소한 근심이 멀리 도망가요』남편과 사별한 후 딸 셋을 혼자 키우고있다는 김정숙씨 (강동구 풍납동 220의19) 는 『이제에 판소리 없으면 사알 재미가 없어어요』라고 창으로 대답할 정도로 3년6개월의 세월 속에「소리꾼」이 되어버렸다.『판소리 각 마당에는 인생의 가르침이 다 들어 있어요. 춘향가에는 변절 않는 사람이, 심청가에는 지극한 효성이…. 창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삵의 지혜도 배우죠. 늙어서 목소리는 안나오지만 그냥 판소리에 취해서 열심히 다녀요. 남 50이 넘은 두 딸을 대등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강습회에 나오는 최고령의 임순악 할머니 (76·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109동305) 는 「부산교육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는 전직 고교 교장.
이렇듯 80을 바라보는 할머니에서 국교 꼬마까지 한마음이 되어 우리 서민조상들이「판」 (놀이판·굿판 등)에서 부른 「소리」 에 심취되는 이 판소리 강습회는. 사단법인판소리 보존연구회가 처음으로 83년1월 이후 계속 마련하고 있는 것.
『그 동안 4천8백여 명이 판소리를 어느 정도씩 익혀나갔는데 그중 여성이 60%이상이었다』는 조상현 이사장의 얘기.
이 같은 조씨의 얘기는 최근 여성들간에 움트고 있는「우리소리 배우기」 의 열기를 대변해준다.
매주 수∼토요일(하오2∼4시) 열리는 이 강습회의 평일 수강생은 40여명으로 무작정 판소리가 좋아 배우는 주부·여대생 등 20∼50대 여성이 대부분.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점증되자 흥사단 서울지부도 지난 12일부터 (매주 금 하오7∼9시) 실기강습회를 시작했다.
『판소리는 악보가 없어요. 우리의 격정 그대로를 표출한 자연 발생적인 겁니다. 그런 것이기에 와서 무조건 따라 부르면 감정에 와 닿아 무조건 알게 된다는 게 제지론입니다』조씨의 주장을 알 것 같다.
『심청가』를 배웠다고 해서그것을 응용해 『춘향가』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좋아서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는 게 각자의 과정」 이라는 강사 김수연씨 (38) 의 설명.
그러기에 3년이 된 사람이나 이제 갓 들어온 신입생이나 한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따라 함께 목청을 돋울 수 있으며 그 「판」의 신명이 여성들을 「우리의 소리」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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