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뉴욕시민 감동시킨 한국 판소리의 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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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가장 대표적인 여름 축제인 '링컨센터 페스티벌'이 3주 일정을 마치고 지난 27일 막을 내렸다. 축제 기간 많은 화제작들이 공연됐다.

유럽.남미.중국 등 전세계에서 초청받은 쟁쟁한 해외 프로그램 속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놀랍게도 한국의 전통공연 시리즈였다. 첫 공연이었던 김금화의 '서해안 풍어제 대동굿'은 공연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완전히 매진됐고, 안숙선.조통달.김수연.김영자.김일구 등 우리의 대표적인 다섯 명창의 '판소리 완창' 시리즈도 마지막까지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운 전통 공연 시리즈가 냉정한 뉴욕 관객으로부터 이런 호응을 얻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칼을 물고 있는 김금화씨의 사진을 페스티벌 전면에 내세운 링컨센터 측의 도발적인 홍보 전략이 주효했다. 전통적으로 1인극에 익숙한 서구인들에게 다섯시간이 지속되는 판소리도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관객들은 비록 사투리의 감칠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자막을 통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추임새와 장단 맞춤 등 판소리의 독특한 형식미에 집중하면서 명창의 감정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게다가 시간적으로 길고 힘든 굿이나 판소리가 서구인들이 중시하는 '예술가의 고독과 고통'이라는 고전적인 명제와도 부합해 플러스 요인이 됐다. 여기에 신비감도 더해졌다.

아담한 크기의 존 제이 칼리지 극장(6백11석)을 무대로 선택한 안목도 훌륭했다. 뉴욕주립극장이나 에버리 피셔홀처럼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멀고 지나치게 큰 극장이었다면 관객이 받을 수 있는 감동이 그만큼 줄어들었을 게다.

한국의 전통 공연은 중국의 화려한 경극이나 형식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의 가부키 등과 비교해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관객은 공연 종료와 동시에 열렬한 기립박수로 응답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한국의 전통 예술가들이 냉정한 뉴욕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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