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안 마셨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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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2일 상오1시 서울 경희의료원 중환자실.
『우리 딸아이 어떻게 됐나요』
의식을 회복한 음주 운전사고의 피해자 김경화씨 (37·여) 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막내 딸을 애타게 찾는다.『아무 일 없으니 염려 말아요』 김씨가 받을 쇼크를 염려해 딸이 숨진 사실을 숨기는 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었다.
김씨는 전날 밤 10시쯤 서울수유1동 집 앞에서 막내딸 성미양 (3) 을 업은 채 택시를 기다리다 술에 취한 손모씨(31·무직)가 과속으로 몰던 승용차에 변을 당했다.
성미양은 뇌진탕으로 숨지고 김씨는 차체에 스웨터가 걸려 2백m쯤 끌려가는 바람에 갈비뼈 13대가 부러지는 중상.『엄마 무슨 날벼락이에요』병원에 달려온 맏딸 성희양(15·중3)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엄마를 보고 울부짖었다.
커 가는 네 딸의 교육비를 식품회사 계장인 남편 (41) 의 월급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장위 시장에 가게를 세내 햄 소시지·어묵 등을 파는 식품점을 경영해왔다.
수유동 집의 세 딸을 친정어머니 (74) 에게 맡기고 김씨는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 남편과 막내딸을 뒷바라지하며 아침7시부터 밤11시까지 1주일 내내 일했다.
사고가 났던 21일은 막내딸 성미양의 생일. 가게를 잠시 남편에게 맡기고 치킨 몇 개를 사들고 수유동 집의 딸들을 찾아가 조촐한 생일축하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장위 시장으로 갈 택시를 타려다 그만 날벼락을 당했다.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순간 운전경력 3년의 손씨는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술만 마시지 않았으면….』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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