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 "성남대첩"의 신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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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남녀 하키에 쿠데타』『한국 하키혁명에 성공하다』-.
9월30일 하오2시, AP·AFP를 비롯한 세계 유력 통신들은 한국이 하키의 세계 최강국인 파키스탄과 인도를 꺾고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사실을 「하키 계의 쿠데타」 라는 표현의 제목 아래 일제히 급보로 타전했다.
불과 40년 역사의 한국하키가 1세기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60년대 이후 세계정상급을 자부해온 인도와 파키스탄을 꺾는다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 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인 뉴스였다.
사실 한국남녀 하키 팀이 이룩한 「성남대첩」 은 탁구에서 한국이 중공을 격파한 것 못지 않은 사건이라고 할만했다.
지난 82년 뉴델리대회 2위에서 바로 정상으로 올라선 여자 팀의 쾌거도 값진 것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남자 팀이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을 양분해온 파키스탄과 인도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낸 것은 경이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비인기 종목인 남녀 하키 팀의 이 같은 급성장은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온 결실.
여기에 조직력 중심의 유럽 스타일과 개인기 위주의 인도·파키스탄 스타일을 배합한 「한국형 하키」 의 전술개발이 빛을 본 것이다.
그러나 하키 쿠데타의 주역들은 그날이후 다시 실의에 빠져있다. 농구나 배구처럼 실업팀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팬들의 박수 소리도 그때뿐이었기 때문.
22일 한국 체육기자 연맹으로부터 86년의 지도자 상을 받은 남자대표팀의 유민승 감독은 『백 개의 상보다 남자실업팀이 생겼으면 좋겠다』 면서 공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인도나 파키스탄의 시대는 지나갔다.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새로운 강적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한국 하키가 오히려 도전 받는 입장에 놓였다. <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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