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국내유가 별 변동 없다-OPEC 합의와 국내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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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OPEC(석유수출국기구)13개국이 제네바에 모여 열흘동안 열심히 상의한 끝에 산유량을 줄여 값을 올리고 거래도 정찰제로 하겠다고 나섰다. 「설마」하고 구경하던 대부분의 소비 국들은 약간 긴장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큰 걱정을 하는 모습들은 아니다.
비축해 놓은 기름이 많은데다 기름성수기가 지나가고 있고 또 OPEC의 단합에 의심을 품고있기 때문이다. 평균 7·06% 감산하자는 합의에 이라크가 빠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동산유국들이 원하는 배럴 당 l8달러보다 34센트나 높은 값을 기준으로 국내 기름 값을 정해놓고 있다. 그런 만큼 달러로 올라간다 해도 국내 기름 값 인상은 필요없다는 약간 느긋한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유 값이 올라가면 기름 들여오는데 드는 돈이 늘어난다. 얼마나 더 들겠느냐는 것은 석유수출국기구의 감산과 배럴 당 18달러 고정 가격 제 등 2중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어쨌든 이번 OPEC의 합의로 얼마동안 기름 값은 배럴 당 17 ∼18달러 수준까지 오르겠으나 계속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OPEC는 배럴 당 18달러의 가격유지를 위해 내년 상반기 중 기름 생산을 지금의 하루 1천7백만 배럴에서 1천5백80만 배럴로 줄이겠다고 했다.
이번 OPEC결정에 대해 이라크가 할당량 준수를 거부하고는 있지만 나머지 12개국은 「당분간」합의사항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9% 감산합의로 배럴 당 9달러이하까지 내렸던 기름 값을 15달러 선까지 올린 경험을 한 바도 있다.
비 OPEC나라 중 멕시코와 노르웨이가 이번 감산에 동조의사를 비추고 있다.
이같은 여건에 심리적 영향까지 가세한다면 국제유가는 배럴 당 18달러를 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내년 3월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뒤바뀔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비수기엔 자유세계의 석유소비가 하루 1백만∼1백50만 배럴 정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석유소비 국들의 재고도 정상보다 3억5천만 배럴 정도 초과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있어 기름 값이 오를 경우 재고 방출을 늘릴 것이 분명하다.
하루 6백80만 배럴의 기름을 수입하는 미국의 움직임도 큰 변수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미국이 OPEC기름 값 인상을 부채질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내년 1월 에너지 수입 절감책 보고서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멕시코나 베네쉘라 등 산유국의 외채문제는 유가인상보다 이들 나라의 석유구매를 늘림으로써 도와주겠다는 생각이라고 이 원장은 분석했다.
이같은 OPEC에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대부분의 석유 전문가들은 국제 기름 값은 늦어도 3월 이후엔 배럴 당 15달러나 그 이하를 밑돌 것으로 보고있다. OPEC나라들의 고질적인 할당량 위반과 덤핑이 다시 나타나 감산과 공시가격의 2중 약속은 깨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번 OPEC총회 합의사항 중에는 위반하는 나라가 하나만 생기더라도 협약은 무효가 된다는 조항마저 들어있다.
OPEC의 배럴 당 18달러 고정 가격 제가 내년 2월부터 실시된다해도 일단은 국내 기름 값에는 영향이 없다. 국내기준 유가와 그 동안 쌓아 놓은 석유사업 기금이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기름 값은 도입가격을 배럴 당 18달러34센트로 기준하고 있다. 배럴 당 18달러기준의 국제원유 값에 수송비·금융비 등을 더한다 해도 우리나라는 주로 값이 싼 중질유 를 들여오므로 도입가격이 배럴 당 18달러를 넘기는 힘들다.
혹시나 도입가격이 배럴 당 l8달러34센트를 넘어선다 해도 얼마동안은 지난 3월 이후 거둔 석유사업기금으로 버틸 수 있다.
올해 말까지 거두어들일 기금규모는 모두 1조l천7백억원. 이중 에너지 절약 등 관련분야에 쓰고 남는 돈은 4천7백억원이다.
우리나라가 연간 내수용으로 들여오는 원유는 1억7천만 배럴 정도. 따라서 도입단가가 배럴 당 18달러34센트를 3달러 초과한다 해도 1년 동안을 남아있는 석유사업기금으로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원유 도입비의 추가부담이 문제다. 내년 중 석유도입가격이 배럴 당 18달러로 유지된다면 올해의 평균 15달러 선보다 3달러 높게된다. 도입량을 예년의 1억7천만 배럴로 잡을 경우 한 해 동안 모두 5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더 들어간다. 그만큼 국제수지에 주름살이 가는 셈이다.
정부가 내년 중 기름 값이 배럴 당 15달러 선을 유지한다면 전력요금을 내리겠다고 한 것도 유가가 오르는 만큼 어렵게 될 것이다. 또 내년 1월 공급을 목표로 인도네시아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의 가격문제도 우리에게 불리해진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배럴 당 13달러의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LNG가격을 제시해왔었다. <배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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