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 안은 법안들 제동 없이 양산-막 내린 국회상위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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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의 불참 속에 지난 9일 농수산위부터 파행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국회의 각 상임위들은 15일 금년 활동을 마감하면서 68건의 안건들을 처리, 통과시킴으로써 유례없는 능률성을 과시했지만, 법안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들을 충분히 거르지 못한 채 넘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미통상 관계법의 일괄통과 때 여당의 한 의원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신선한 화제가 되고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한 여당의원이 반대해 표결까지 한 것이 큰 화제 거리가 될 정도로 거의 모든 안건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여당과 동참한 국민당·민중 민주당 등 군소정당 의원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거의 들리지 않았고 최저 임금법안 심의 때 국민당만 일부가 참작된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거의 모든 법안과 안건들이 정부 원안의 형태로 통과됐고 국회에서 수정되거나 대안이 제시된 것 은 사실상 거의 없이 넘어갔다.
한미통상 관계법들은 내용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고 정부나 여당 측도 신민당의 「반대」를 은근히 기대까지 했었다.
상당수 위원회들은 단 하루의 회의로 거의 모든 안건을 처리했다. 심지어 재무위는 신민당이 반대하던 전매 공사법을 포함해 11개 법안·11개 동의 안 등 22개 안건을 하루만에 해치웠다.
최저임금법이나 노동관계법들은 서민생활이나 근로자문제에 직결되는 중요법안 들이었지만 심사과정이 국민에게 거의 부각되지도 못한 채 넘어갔다.
민정당은 신민당과의 협상과 상관없이 이미 모든 법안을 12일까지 해치우도록 내부적으로 지시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단독운영을 미리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민당은 그들이 반대하고 신중하게 심의할 것을 요구했던 법안들을 그대로 넘겨버리고만 꼴이 되어버렸다.
결과론이지만 역시 단독 국회는 많은 문제점을 남긴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야당이 있었던들 부분적이든 본질적이든 문제 규정의 삭제·수정·완화 등이 가능할 수도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설사 다수결로 민정당이 강행한다 하더라도 심의 과정에서 문제점이 부각되고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며, 그리하여 논란의 대상이 된 쟁점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의 재론 또는 수정문제가 제기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상위에서 통과된 의안들 중 중요한 것이 많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책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신민당이 들어가서 제대로 심의했던들 개선되고 수정 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여당은 역시 파행을 피해야하고, 야당도 역시 국회불참을 대여무기로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저절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민정당의 사실상 단독 운영에 따라 정부측은 법안통과에 따르는 진통을 겪지 않고 「쉽게」넘어간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정부측은 가능하면 소관법안을 모두 처리해 줄 것을 여당 측 및 상임위원장에게 강력히 요구해 정부 제출의 법안으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지방자치관계법 4건과 사회적 논란이 분분한 정신보건법안, 농축수산물 가격안정 기금법안 등 6건에 불과 할 정도로 모든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이 같은 무더기 통과법안 중 가장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대미통상 관련법안으로 일부 여당의원마저 야당이 참석해서 심의했더라면 이런 무참한 결과는 낳지 않았을 텐데 라고 낙??할 정도의 불평등 조항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지난12일 외무위에서 통과된 「제법특허출원의 물질특허보호에 관한 한미 정부간의 서신교환 비준 동의안」은 우리 헌법12조의 소급 입법의 금지조항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의 소지를 충분히 담고 있는 대표적인 「악법」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이 동의 안은 개정된 특허법이 발효될 87년7월1일 현재 우리 특허청에 계류중인 미국인의 제법특허출원에 대해 물질특허청구를 할 수 있도록 보정 신청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이는 물질특허도입 시 미국인에 한해 과거에 낸 제법특허도 물질특허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으로 외국에도 이런 예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헌법의 소급 입법금지규정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여당의원 일부에서조차 제기될 정도.
현재 미국인이 우리 특허청에 신청해 계류중인 제법특허출원은 1천여건에 달해 문제의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다.
그래서 외무위의 전문위원은 심사 보고를 통해 『미국에 대해서만 보호 조치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소급입법을 거부하고 있는 우리 헌법정신에 비춰 신중히 대처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결국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 상공위에서는 대외 무역법·특허법 개정안, 문공위는 저작권법·영화법 개정안 등을 각각 통과시켰는데 이들 법안은 모두 정부가 미국과의 교섭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의 이익만 보장하는 선에서 타결된 합의내용을 수용한 「불평등」법안의 전형적 예다.
그래서 상공위에서는 여당의 이상희 의원이 명목상 15년간으로 되어있는 물질특허보호기간이 실은 30년까지로 연장 될 소지가 정부제출의 특허법개정안에 있다고 지적했으나 정부측의 한미간 합의 사항이라는 한마디에 간단히 처리됐다.
○…이같은 법안심의 자세의 졸속으로 국민들이 영향을 받게될 법안 중에는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국민당 측의 집요한 주장으로 농민들에게 일부 혜택이 돌아갈 조항이 신설되었지만 신민당 측이 참여해서 실질적인 투쟁을 벌였더라면 훨씬 농어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국회 주변의 분석이다.
또 하나 이번 상임위활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내무위에서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관계법안에 대해 여야가 다같이 상정조차 하지 않는 자세다.
여야는 똑같이 지자제 문제는 개헌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민주화의 근간의 하나인 지자제를 규정할 법안을 심의조차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야 공히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들이 많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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