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마다 이슬』 양모 김윤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터미널 구내식당에 혼자 앉아 울고 있던 이슬을 데리고 나와 수희가 섬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모든 시련은 끝났다는 느낌과 함께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14일 막을 내리는 MBC-TV의 주말극 『풀잎마다 이슬』(김상렬극본·고석만연출)에서 이슬의 양모 주혜역을 맡아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준 김윤경(41)은 연기생활 18년동안 이번처럼 힘든 드라머는 없었다고 말문을 연다
끝나기 직전까지도 이슬이 생모 백수희(김자옥분)에게 가느냐, 양모 주혜에게 가느냐를 예측할 수 없어 시청자들을 애태웠던 이 드라머가 결국 양모쪽으로 기운 것은 김윤경이 보여준 처절한 모성애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슬이 친 엄마를 찾아 집을 나갔을 땐 별로 위기를 느끼진 않았었어요. 그런데 죽었다던 수희가 막상 나타나면서부터 절대로 이슬을 뻣길 수 없다는 본능이 일어 대사를 욀때는 침이 마를 지경이었지요』10년간 친자식처럼 키웠는데 이제와서 뻔뻔스럽게 딸을 돌려달라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동생처럼 아끼던 김자옥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단다. 『연출자 고선생님과 이슬을 그만 괴롭히라고 숱하게 싸웠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주혜였어요.』
국민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68년 KBS특채로 연기생활을 시작, 75년 MBC로 옮긴 후 『여고동창생』『신부일기』『사람과 진실』등을 통해 「차갑고 지적인 연기파」로 알려진 김윤경은 실제로 자식이 없던 양모 외숙모를 사춘기 때까지 생모로 알고 자랐으며 지금은 헤어진 남편 박일씨(성우)사이에서 난 네살짜리 쌍동이 아들들을 홀로 키우고 있어 『풀잎…』은 그녀에게 숙명과도 같은 드라머였고 모성애 화신 주혜는 그녀의 분신 같았다고 한다. 9일 밤 마지막 촛불예배장면을 찍고 헤어질 때 『주혜엄마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던 이슬역 윤재미양의 귀엽고 서글픈 얼굴이 아직도 어른거린다는 김윤경은 드라머 속에선 그토록 속을 썩이면서도 평소엔 친 엄마처럼 졸졸 따르던 그 아이가 『사랑과 진실』의 두딸 정애리·원미경에 이어 『풀잎…』이 준 세번째 딸이라며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김윤경은 결국 모정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다. <기형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