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로버트金 부인 장명희씨 來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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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97년 큰아들 결혼식 때 남편이 참석하지 못해 눈물의 결혼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4년 전 약혼한 막내딸은 지금까지 결혼식을 미루고 있고요. 남편이 자유로운 몸이 되면 혼례를 치를 예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했던 남편이 어서 손자들의 재롱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간첩 혐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서 7년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로버트 김(63.한국명 김채곤)의 부인 장명희(張明熙.60)씨.

지난 27일 열린 '로버트 김 후원회(www.robertkim.or.kr)' 발족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張씨는 "모범수로 인정받아 형량의 15%가 감형된 남편이 출소하는 내년 7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를 29일 오후 로버트 김의 아버지 김상영(90)씨가 요양 중인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수동요양병원에서 만났다.

로버트 김은 96년 미 해군정보국(ONI) 군사정보 담당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취득한 한반도 관련 기밀을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에게 넘겨준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고,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張씨는 남편이 체포됐던 96년 9월 24일의 상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밤 9시쯤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래서 평소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사오던 남편이 손에 물건을 많이 들고 있어서 열쇠로 문을 열지 못해 초인종을 누르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문을 여니 수십명의 FBI 요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어요. 사진을 찍고, 전화 녹음테이프.컴퓨터 등을 압수하는 등 무려 여섯시간 동안 집안을 샅샅이 뒤지더군요. 전 거실에서 꼼짝도 못한 채 화장실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갑작스런 남편의 체포는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남편이 미 해군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맡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던 데다,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張씨는 97년부터 생계를 꾸리고자 자신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의 한인 교회에서 청소원으로 근무해야 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교회로 가 새벽예배를 보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교회에서 온갖 궂은 일을 했다. 올 초부터 시작된 허리.다리 통증 때문에 현재는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상태.

그는 "남편의 정보제공 활동은 조국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만큼 한국 정부가 남편을 모른 척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상황을 너무나 모르는 게 답답해 대북정보를 한국 측에 주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96년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해군 무관 백동일씨도 '로버트 김이 준 정보가 한국의 대북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됐다'고 증언하고 있잖아요. 남편의 죄라면 자신의 행위가 인생에 이렇게 큰 불행을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남편이 언젠가 저한테 '순간적으로 귀신에 홀렸던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남편과 자신은 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로버트 김 사건은 우리와 무관하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했을 때 한국 정부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문제가 한.미 양국 정부의 미묘한 입장과 한반도 정세와 연관돼 있다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후원회가 모은 성금도 "남편보다 한국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張씨의 남은 소망은 3년의 보호관찰 기간이 단축되거나, 보호관찰 자체가 취소되는 것이라고 한다. 보호관찰 기간에는 외국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남편은 임종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아버지를 뵙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자칫 불효자가 돼 천추의 한을 안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지금까지 남편의 석방과 구명을 위해 후원해 주신 한국인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고마움도 전하고 싶어합니다."

張씨는 서울 이화여고에 다녔던 61년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로버트 김을 만났다고 한다. 67년 미 퍼듀공대에서 유학 중이던 로버트 김과 결혼해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았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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