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에 재정난…결국 ‘달러 빚’낸 사우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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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를 죄악시하는 쿠란(이슬람 경전)의 영향으로 국제 채권시장을 외면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외화표시 국채를 발행했다. 175억 달러(약 19조7000억원) 규모다. 이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난 4월 발행한 국채(165억 달러)를 넘어선 신흥국 역대 최대치다.

사상 처음 175억달러 채권 발행
신흥국 국채 중 역대 최대 규모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국채 입찰에 670억 달러(약 75조원)가 몰렸다. 매력적인 금리 덕이 컸다. 이번에 발행된 국채 수익률은 5년물이 2.6%, 1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3.41%, 4.63%다. 미국 국채보다 1.35%포인트(5년물)~2.1%포인트(30년물) 높다. 블룸버그는 “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사우디 국채에 몰렸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가 ‘달러 빚’까지 낸 이유는 심각한 재정난 때문이다. 정부 재정수입의 약 80%를 차지하는 국제원유 가격이 폭락하면서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 수입은 1620억 달러(약 182조원)로 전년 대비 40% 넘게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14년 3.4%에서 올해 19.4%로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 채권을 발행하고 외환보유액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정부 부채가 급증하고 외환보유액은 8월 말 기준 5621억 달러(약 633조원)로 2년 새 200조원 넘게 줄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내부 자금조달이 한계에 부딪혀 외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향후에도 발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서비룡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사우디가 새로운 채권 투자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번에 조달된 자금을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탈(脫) 석유 개혁’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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