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서울 대회」 의식한 다목적용|노 대표의 대표 회담 제의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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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개헌안 단독 발의 가능성이 시사되고 신민당이 서울 개헌 추진 대회를 강행하는 등 정국이 긴장되고 있는 가운데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김일성 사망설을 둘러싼 안보 문제를 명분으로 삼아 신민당에 대표 회담을 제의,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최근 일련의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노 대표가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 이같은 방침을 밝힘으로써 그 배경과 성사 여부 및 이에 따른 정국 향방이 주목된다.
원래 대표 회담은 지난 10일 신민당이 먼저 제안했던 것인데 당시에는 민정당이 대표 회담이 이루어지려면 『무조건 헌특에 복귀해야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내세우며 「튕기는」입장을 보였었다.
그러던 것이 열흘이 지난 후 이번에는 민정당이 대표 회담을 제의하고 신민당이 『시기가 지나갔다』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정당은 신민당의 대표 회담 제의에 대해 표면상 선택적 국민 투표를 수용하라는 신민당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실은 정부의 재야 단체에 대한 강경책이 진행중인 분위기에서 여당이 야당에 대해 「할말」도 「줄 것」도 별로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거부했던 것으로 관측되었다.
그러자 정국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야당 측은 미뤄오던 서울 대회를 마침내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개헌안의 연내 단독발의 가능성을 발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말하자면 여당으로서는 자기들이 가장 싫어하는 서울 대회의 사전 봉쇄를 위해 노력 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그냥 보내버린 셈이다.
마침 김일성 사망 설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노 대표는 안보 문제를 앞세워 한번 보내버린 대표 회담을 다시 거론하고 새삼 합의 개헌을 강조했는데 노 대표 자신 대표 회담의 성사 가능성이나 여야의 정치력 발휘에 의한 서울 대회의 중단 가능성을 내다보고 이런 제의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민당 사정으로는 이제 와서 스스로 서울 대회를 포기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민정당이 뭔가 정국 전개에 있어 진전된 입장을 보이지 않는 한 대표 회담에 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 역시 이런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정당은 이번 노 대표의 제의가 공식 대표 회담 제의가 아니라 여야 대화는 언제나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 대표가 일부러 대표 회담을 제의하고 「모양 있는 합의 개헌」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단독 발의 검토」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한 소식통은 『아직까지는 시기적으로 단독발의 운운의 언급을 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 고 운을 떼면서 『어쨌든 이 문제로 인한 「소동」은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 회담을 거론한 것은 단순히 전술적 차원이라는 것이 정계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즉 신민당이 어차피 서울 대회는 치를 테니까 만약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표 회담을 통해 자제를 권유했는데도 개최했다는 차원에서 대표 회담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신민당이 대표 회담마저 거부하면 『민정당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신민당이 밖으로 나갔다』는 대 국민적 명분을 갖게 돼 결국 이래저래 대표 회담 제의는 유리하다고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정당은 신민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 강온 전략을 적절히 구사, 한편으로는 「엄포」도 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건 이미지에서 오는 이도 취하자는 방침인 것으로 요약된다고 볼 수 있다.
민정당의 연내 처리설을 믿고 있는 많은 신민당 의원들은 여권의 기본 기류에 비추어 볼 때 노 대표의 「합의 개헌」 강조가 얼마만한 진실성을 담고 있는 것인지 주목하는 모습이다.
물론 여권의 속성상 완벽한 시나리오를 작성,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지만 들려오는 「소리」와 노 대표의 언급간에 보이는 간격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들려오는 「소리」에 따르면 민정당은 다른 변수나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연내 단독 발의로 나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견해인데 노 대표가 새삼 합의 개헌을 강조한 것은 그런 「소리」를 부인하는 건지, 단독 발의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단순한 연막인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실정이다.
노 대표의 제의가 나오자 동교동계는 즉각 「교란책」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대표 회담 제의도 일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다만 노 대표의 제의가 『김일성 사건에 따른 북괴의 책략에 관한 정부측 분석보고 청취』라는 형식도 깔고 있으므로 상도동계나 이 총재의 입장에서는 비록 미미하지만 운신 해 볼 여지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상대방이 대화하자는 것을 거부만 해서는 득이 될게 없다는 차원에서, 특히 대회이후의 정국 전개에 대한 여권의 의도를 알아보자는 선에서 얘기가 오가고 의견의 일치를 보게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사 대표 회담이 개최된다 하더라도 헌특이 재개되거나, 서울 대회를 중단하는 결과를 낳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결국 현 정국은 「정해진 물줄기」를 돌릴 수 없게 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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