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 불출마 선언」을 보는 정부-여당의 눈|겉으론 "냉담" 속으론 "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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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은 직선제를 수락하면 대통령에 불출마하겠다는 김대중씨의 선언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그에 대한 정부·여당의 냉담한 시각을 확인해주었다.
어떤 언행을 하더라도 김대중씨라면 일단 불신·거부부터 하고, 그 동기를 「야심」과 「술수」의 차원에서 의심하며 법과 힘을 앞세워 묵살 또는 좌절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정형이 이번에 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이는 야권과 국민에 대한 김씨의 영향력을 실세로 인정하지 않고 평가 절하를 하면서도 항상 김씨의 언행에 자극받는 민정당의 고민을 단적으로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대책 회의 열려다 취소>
그런 만큼 김씨의 불출마 발언에 대한 민정당의 반응은 냉혹하며 처방도 단호하다. 그 같은 발언은 정색하고 다룰만한 가치가 있거나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되며 속셈은 국민의 동정심을 유발해 직선제를 관철하려는데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문제를 아무리 그렇게 인식하고 김대중씨를 가볍게 보려해도 속마음까지 편안해지지 않는 데에 민정당의 고충이 있으며 이 같은 이중성은 김대중씨 문제를 다루는 정부·여당에 이따금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드러내게 한다.
5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 위원 주재로 김씨 발언에 대한 대책 회의를 가지려다가 회의를 여는 것 자체가 김씨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지적 때문에 모여서 얘기는 하면서도 「회의」는 열지 않은 것이나, 이미 이춘구 사무 총장이 언급한 내용을 뒤늦게 부대변인 「논평」으로 격을 낮추어 공식 대응한 것 등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아뭏튼 민정당은 김대중씨의 불출마 발언을 여권 정치 스케줄의 변화요인으로 보거나 정면으로 응수할 생각이 없는 것만은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묵살론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민정당의 반박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그는 형 집행 정지자이고 공민권을 제한 받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출마 여부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출마 자격이 없는 사람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둘째 진실로 개인의 욕심을 버린 민주화가 불출마 선언의 목적이라면 「직선제 수락」이란 조건이 없었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뒤집어 민정당이 특정 정파나 개인을 의식해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상통한다.
셋째 그의 선언은 신민당 내, 재야·국내외로부터 불리하게 조성되고 있는 여론의 역풍을 뚫어보려는 「잔꾀」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특히 김영삼씨와의 역학관계, 신민당 일부의 양 김에 대한 거부 움직임, 미국 조야의 한국 정정에 대한 우려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따라다닌다.
끝으로 김대중씨는 기본적으로 못 믿겠다는 강한 불신이 정부·여당의 기조를 형성하고있는 점이다. 83년 정치를 않겠다고 탄원서를 내고 도미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점을 비롯, 김씨가 했다는 이른바 「거짓말」의 사례들을 들먹이며 이번도 건대 사태 등 자신에게 불리하게 죄어오는 한파 대피가 선언의 한 목적이었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김씨를 비난하고 묵살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민정당내에도 그리 많지않다.

<「거짓말」사례 들먹여>
민정당은 김씨의 발언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내심 결코 과소 평가하지 않고 있다. 특히 김영삼씨 마저 직선제 관철을 앞세워 비슷한 선언을 할 경우 내각제 홍보에 차질이 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김대중씨의 불출마 선언이 직선제의 논리를 상대적으로 강화해준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민정당이 지금까지 직선제의 폐해를 설득할 때 신민당의 직선제는 양 김, 그중에도 김대중씨의 집권욕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직선제가 지역감정을 촉발한다는 것도 민정당이 내세운 강력한 포인트의 하나였는데 김씨가 불출마할 경우 이런 지적의 설득력은 상실될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김씨의 선언이 김수환 추기경의 촉구에 부응해 나온 것이라는 성격도 있는 만큼 앞으로 김영삼씨까지 비슷한 선언을 할 경우 정부·여당도 상응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여론의 부담을 안게 될는지도 모른다. 민정당은 최근 추기경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정치·개헌에 관한 추기경의 구체적 언급에 불만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정당 의원들 중에는 김씨의 이번 불출마 선언으로 촉발될 야권 판도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내각 책임제로의 합의개헌에 가장 장애 요인이 김씨라고 보고 있는 여권시각으로는 그의 불출마가 그의 추종자들의 직선제 관철 의지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느냐 하는 점이다. 또 신민당의 정풍파가 그의 불출마 선언에 고무받아 동조세력을 늘리거나 움직임을 더 활성화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요컨대 직선제라는 단일목표로 응축돼 있는 신민당에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각도에서 그들은 야권 내부를 관심있게 보는 눈치다.

<대표 회담·헌특 서둘러>
민정당으로서는 두 김씨가 모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세를 춰해도 내각책임제를 추진하는 것은 불변이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아뭏튼 민정당은 가급적 빨리 대표 회담 등을 통해 헌특을 정상화시키고 국회를 정상 운영해 김대중씨의 선언을 국외자의 발언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아울러 김영삼씨가 귀국해야 분명해질 양 김의 관계, 이민우 총재의 거취, 당풍 쇄신파의 움직임 등 복잡한 신민당 내부사정과 정부의 효율적인 좌경·용공대처가 김대중씨의 발언비중을 희석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는 듯하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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