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아닌「창의」행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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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시안게임에서 확인한 귀중한 교훈의 하나는 올림픽이 단순히 힘과 기를 겨루는 스포츠만의 제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문화예술의「미의 제전」이 곁들어 짐으로써 비로소 올림픽은 균형 잡힌 종합축제가 된다.
그것은 그리스의 고대올림픽 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쿠베르탱」은 올림픽이 스포츠와 함께 민속·문학·음악·미술의 제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오늘날 올림픽의 성공을 참가선수단 규모나 기록갱신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세계인에게 어떤 감동으로 전달했는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가령 멕시코 올림픽에서「아즈테카 문명」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든지, LA올림픽에서는 미국의 개척정신에 초점을 맞춰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마침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올해 있었던 아시안게임의 문화예술 축전을 평가하고 2년 앞으로 다가온 88서울올림픽 문화행사를 어떻게 꾸밀 것인가를 토론하는「대화의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많은 인사들은 아시안게임의 문화행사가 조직위원회·문공부·서울시 . 문예진흥원 등으로 행사 주관 부서가 분산되어 전체적인 조화와 효율을 이루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서울올림픽 문화행사는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총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새삼스러운 얘기 같지만 53일간에 걸쳐 32개 공식행사와 20여 개의 비공식 행사가 펼쳐진 아시안게임의 문화예술 축전은 행사가 너무 집중되어 내 외인들이 소 화하기가 힘들었다. 공연내용도 보통예술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현대예술 쪽에 소홀했다.
또 1만8천여 명이 동원된 개·폐회식 행사는 그 나름대로의 열정과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으로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고전이나 전통에 대한「재창조」의 노력과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을 보여주자』는 것은 단순히 옛것을 그대로 옮겨 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각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새롭게 창조하자는 뜻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생명을 갖고 감동을 주는「작품」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오랜 타성에 젖은 이른바「관제문화」에서 하루속히 탈피하는 길이다.
문화란 기본적으로 개인적 역량과 자유의 소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나 어떤 집단이이를 강제적으로 집행하려 할 때 자생력과 창의성을 상실한다.
일찍이 유네스코가 표방한 문화정책의 대강도『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한 국가의 문화정책에 적용해도 좋은 충고가 될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문화행사는 예술인들이 소외됨으로 해서 수평적「협조」가 없이 오직 관의 수직적「지시」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를 만한 민간단체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는 된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투자와 자율성보강이 보다 장기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2년 후에 민족적인 대사를 치르게 되었다. 더구나 서울올림픽에는 동구권까지 참여한다. 따라서 모든 이데올로기와 예술이 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과 신명나는「예술의 한판」을 겨루려면 우리의 문화정책도 한 차원 높여야 할 것이다. 그때는「예술적 표현 한계」의 폭도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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