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당당한 배우”…주민 15명 모여 ‘마을영화’ 찍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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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평범한 주민들이 모여 영화 제작에 도전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2동은 11일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참여한 마을영화 ‘간뎃골 사람들’을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뎃골은 지리적으로 광주 북구의 한가운데 위치한 중흥동 일대를 의미하는 옛 지명이다.

광주시 중흥2동 주민 직접 참여
단편영화 ‘간뎃골 사람들’ 제작
3개월 준비…윤수안 감독 메가폰
주부가 어릴적 꿈 도전하는 내용
22일 ‘문화한마당’에서 첫 상영

이 마을영화는 결혼 생활로 지친 주부 ‘미진’이 이웃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아 젊은 시절 꿈이었던 가수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담은 25분짜리 영화다. 시나리오는 중흥2동에 사는 한 주민의 실제 사연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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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중흥2동의 마을영화 ‘간뎃골 사람들’에 출연한 주민 배우들이 지난달 26일 윤수안(왼쪽 넷째) 감독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 북구]

주민자치위원회가 주관한 마을영화 제작은 지난 6월 말 영화에 출연할 주민배우 모집을 시작으로 본격화했다. 마을 곳곳에 내걸린 배우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주민 30여명이 도전장을 냈다. 학생·주부·회사원·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의 주민들이다.

메가폰은 ‘불림소리’ ‘광인’ 등 다수의 독립·단편·장편영화 경험이 있는 윤수안(41) 감독이 잡았다. 윤 감독은 광주 지역 영상활동가들이 팀을 꾸려 만든 독립영상제작단체 필름에이지의 대표도 맡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 중 하나로 영화 제작이 이뤄지면서 제작비 약 680만원은 구청 측이 지원했다.

의욕이 있다고 누구나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3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심사 과정을 통과한 15명 안팎의 주민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영화에 출연해 본 경험이 없는 주민들은 카메라와 친해져야 했다. 직접 카메라를 조작해보고 촬영을 시도했다. 배우의 모습이 카메라에 어떻게 담기고 실제 화면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어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진·잡지 등을 활용해 자신의 일생을 표현했다. 이 가운데 홍진주(57)씨의 이야기가 채택됐다. 주부인 홍씨는 지역에서 소규모 음악 활동을 했지만 바쁜 일상으로 자신의 꿈을 완전히 실현하진 못한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도 뮤지컬을 배우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주민들은 기존 영화의 대본을 보며 연기 공부를 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감정을 이입해 영화 속 연기를 해본 뒤 윤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실제 촬영은 지난달 닷새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주민배우들 가운데 상당수가 식당이나 식육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나 직장인인 탓에 많은 시간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윤 감독과 주민배우들은 최대한 NG를 줄이기 위해 영화 제작에 집중했다.

‘간뎃골 사람들’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모든 과정에 주민과 마을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정집과 식당, 노래방 건물 등은 모두 주민들이 제공했다. 주민들은 스태프들의 간식과 먹거리까지 책임졌다.

영화는 오는 22일 열리는 중흥2동 문화한마당 행사 때 처음으로 공개된다. 주민배우들과 가족·이웃들이 모여 함께 관람한다. 출연한 배우들을 위해 레드카펫도 깔린다.

윤 감독은 “주민들이 영화배우에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자녀 문제와 가정 문제, 생업 등으로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려보고 서로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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