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밖엔 길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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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헌문제를 다룰 이번 정기국회가 순조롭게 운영되리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바탕 북새는 이미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러나 본회의 대정부질문 벽두부터 의원의 발언시비로 회의가 중단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예상을 훨씬 앞지른 파란이었다.
회의 첫날엔『국헌을 수호할 수 없는 정권, 정통성을 자가 부정하는 정권은 더 이상 존속할 가치가 없는 정권』등 현정권의 정통성 시비로 다수당 의원이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니 둘째 날엔『우리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한 야당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또 회의가 중단되었다.
대화니 타협이니 하는 말은 온데간데없고 만났다 하면 대립이요, 얼굴을 붉히는 싸움이 벌어지는 판이 되었다. 오죽하면 국회의장조차『이게 난장판이지 어디 국회인가』라고 개탄했겠는가.
국회는 국정을 논의하는 곳이므로 어떤 말이건 할 수는 있다.
국회의원의 국회 내 발언에 면책 특권을 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이 나올 때 반대의 표시로 야유를 하거나 공감의 표시로 격려를 할 수는 있다.
의회주의의 본산이라는 영국의회에서조차 이런 소란은 흔히 있다.
그러나 국회의 본래 모습은 토론에 있다. 논리의 대결을 통해서 시비곡직을 가리는데서 의회정치는 성장한다.
현재로서는 야당의원들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저의나 배경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정통성 문제에 대해서는 그 동안 야당의원들이 흔히 해 온 말이다. 그러나「반공국시」에 대한 시비는 예민한 문제다. 따라서 그 논란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 같다.
국회의 이변 파란이「일과성 태풍」으로 진정된다면 몰라도 그것이 어떤 불길한 움직임의 전조가 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지금 모색되고 있는 여야타협에 의한 개헌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지도자들이 만난다고 할 때, 국회가 열린다고 할 때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국회에서의 여야의 전략은 좋게 보면 개헌정국의 기선을 잡기 위한 안간힘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좋은 약이 때로는 독이 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취를 위한 고지점령이 아니라 판을 깨기 위한 기선 잡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자극적이고 민중봉기를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걸핏하면 퇴장을 하고 회의를 중단시켜 정국을 어디로 몰고 가자는 것인가.
지금 정치인들이 시급히 풀어 주어야 할 일은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일이다. 정치가 거꾸로 돌아가면서 다른 분야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역사를 되돌려 놓지 않으려면 우선 국회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이번 국회는 개헌이 최대 이슈이기는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 정치 못지 않게 민생도 중요하다.
우선 집권당은 다수당으로서의 도량도 보여야 한다. 문제발언이 국시에 위반되고 법에 저촉된다면 법에 따른 조치를 하고 국회운영은 제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개헌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야당의 입장이라고 하지만 자극적이고 논리 비약적인 발언을 해서 얻는 핵과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야 한다. 국민 여망은 민주화에 있지 개헌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결보다는 타협과 대화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길임을 거듭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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