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술 좋기로 소문난 강남 성형외과원장…알고보니 간호조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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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이 사람 눈 좀 봐주세요. 쌍커풀 수술 생각하는데 뭐뭐 해야 될까요.”

서울 강남구 A 성형외과의원에서 근무한 임모(56)씨는 성형수술 기술이 좋고 상담도 잘해주는 ‘원장님’으로 유명했다. 임씨에게 수술을 받고 만족한 환자들은 성형을 고민 중인 지인들을 임씨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약 1년 동안 임씨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는 186명에 달했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엔 연예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임씨는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로 드러났다. 지난해 A 의원을 인수한 강모(40)씨가 간호조무사인 임씨가 수술 기술이 뛰어난 걸 알고 직접 수술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강씨는 비뇨기과 전공의라 눈ㆍ코 등의 성형수술엔 서툴렀다. 강씨는 임씨에게 수술을 시켰을 뿐 아니라 절개 부위를 특정하고 보형물을 삽입하는 요령 등 수술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환자들은 원장행세를 하는 임씨에게 속아 넘어가 의심 없이 수술을 받았다. 임씨가 당당하게 의사 가운을 입고 다니며 화려한 수술실력을 뽐낸 덕분에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마저 속아넘어 갔다. 임씨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건 임씨를 고용한 원장 강씨 뿐이었다. 그러나 강씨는 스스로 수술을 하고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자 임씨에게 병원을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병원을 그만둔 임씨는 이후 다른 병원들을 다니며 출장 성형수술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30여년 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뒤 의무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이후 서울 광화문 인근 성형외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수술 기술을 익혔다. 뛰어난 언변과 수술 실력으로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로 소문이 났지만, 무면허 성형수술을 하는 병원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에게 꼬리가 잡혔다. 경찰이 휴대전화 추적을 통해 강남의 다른 성형외과에서 임씨를 체포했을 당시에도 원장실엔 그의 이름이 새겨진 의사 가운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임씨를 입건한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임씨의 휴대전화 일정표에 수술 일정이 여러건 저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임씨가 다른 병원에서 출장 수술을 벌인 일이 있는지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고 10일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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