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 어선, 해경 고속단정 침몰시키려 확인충돌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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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고속단정이 지난 4월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51해리 떨어진 곳에서 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고 있다. [뉴시스]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이 지난 7일 단속하던 한국 해경 고속단정을 고의로 충돌해 침몰시켰다. 중국 어선에 의해 한국 해경 고속단정이 침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와중에 해경 한 명이 바다에 빠져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단속 중인 고속단정 뒤 들이받아
한 번에 안 되자 다른 배가 또 받아
소총 공중 위협 발사도 소용 없어

특히 중국 어선은 해경 고속단정을 바다에 완전히 전복시키기 위해 ‘확인 충돌’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배종인 외교부 동북아국 심의관은 10일 오후 덩충(鄧瓊) 주한 중국대사관 총영사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중국 측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이와 별도로 해경은 이날 오전 주지중(朱紀忠) 중국 부총영사를 인천으로 직접 불러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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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인천해양경비안전서(인천해경)에 따르면 7일 오후 3시10분쯤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76㎞ 해상에서 중국 어선 40여 척을 단속하기 위해 4.5t급 해경 고속단정(1호기) 등이 출동했다. 고속단정에 있던 해경 9명 중 8명이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에 올라 조타실 자물쇠를 해체했다. 이때 조동수(50·단정장) 경위만 고속단정에 남아 있었다. 나포작전이 불가능할 경우 대원들을 고속단정으로 신속히 철수시키기 위해 조 경위는 고속단정을 중국 어선 옆에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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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100t급 중국 어선(노○○호)이 고속단정의 뒷부분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앞서 한 차례 고속단정으로 달려들던 중국 어선을 급히 피했던 조 경위는 다른 고속단정으로부터 “(중국 어선이) 뒤에 또 간다”는 무전연락을 받았지만 이미 중국 어선과의 거리가 20~30m로 좁혀져 피하지 못했다. 이 충격으로 고속단정이 좌측으로 45도 이상 기울며 복원력을 상실했다.

조 경위는 바다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 직후 선박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중국 어선이 2차로 고속단정에 확인 충돌을 했다. 이 때문에 고속단정이 침몰했다. 자칫하면 조 경위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조 경위는 인근에 있던 고속단정 2호기가 출동해 구조됐다. 나포작전 중이던 대원들은 고속단정을 향해 달려오던 중국 어선이 더 접근하지 못하도록 40㎜ 구경의 다목적 발사기와 K-1 소총 등을 공중으로 발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조된 조 경위는 “중국 어선들은 (해경 대원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중국 어선이 해경 고속단정을 처음 들이받았을 때 고속단정이 완전히 뒤집히지 않자 한 번 더 들이받았다”며 “중국 어선의 이런 행위는 고의 충돌일 뿐 아니라 사상(死傷)의 의도가 충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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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선의 고의 충돌 소식을 전해 들은 관련 실무자들은 2011년 중국 불법어선 단속 중 사망한 특공대원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그간 중국은 불법조업 관련 협의 때마다 한국 측에 ‘문명적인 법 집행’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 이후 한국 정부 내부에서는 “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도전하는데 무슨 문명적 법 집행이냐”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해경 관계자도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폭력적인 저항이 도를 넘었고 이번 사건은 살인미수와 같은 행위”라며 “앞으로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불법조업 어선에는 그동안 자제했던 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는 등 단호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천·서울=김민욱·유지혜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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